임 감독은 지난달 1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근 카페에서 본지와 영화 ‘나의 절친 악당들’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하녀’ ‘돈의 맛’ 등으로 연이어 돈을 장악하는 재벌층을 비꼬며 물질만능주의에 찌든 한국 정서를 비판한 그야말로 ‘성인들의 영화’를 선보였던 임 감독은 그동안의 연출방식을 벗어던지고 저항하는 젊은이들의 삶을 그리는 ‘나의 절친 악당들’로 돌아왔다.
종종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해왔던 임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초반부에 깜짝 등장 후 최후를 맞는 연기를 선보였다.
그가 영화 등장 내내 거칠게 내뱉는 한 마디는 ‘X새끼’였다. 강한 욕설만 남긴 후 바로 사라져버리는 그의 등장은 엉뚱하다는 느낌까지 받게 되는데.
임 감독은 “짧게 등장하는 신인데 제작비 아끼려고 내가 직접 연기했다”며 익살스럽게 웃었다.
하지만 임상수 감독이 이번 영화에서 등장하는 이유는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특히 짧고 굵게 영화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그에 대해 “그동안의 임상수는 죽고 새롭게 태어났다”라는 의미가 일반적이다.
임 감독 또한 “그동안 성인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어왔다고 자부했는데 어느날 젊은 친구들이 내 영화를 싫어한다는 소리를 듣게 됐다. 오히려 싫다기보다는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이다. 편의점 알바를 하던 어떤 친구가 ‘돈의 맛’에 주영작(김강우 분)의 직업도 매우 분에 넘치는 직업이라고 평하더라. 공감할 수 없는 영화를 만들어 왔던 나를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본격적인 청춘영화 ‘나의 절친 악당들’이 탄생하게 됐고 임상수 감독은 ‘지난날의 임상수는 죽고 새로운 임상수로 거듭났다’는 뜻에서 영화 초반의 담았다.
하지만 그가 영화에서 ‘X새끼’를 외치며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잠시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습을 선보인 것은 단순히 그의 새로운 의지만을 담은 것이 아니었다.
‘나의 절친 악당들’은 도발적 상상력과 영화적 재미에 사회적 메시지까지 놓치지 않고 세련된 연출력으로 스피드하면서 스타일리쉬하게 만들어졌다.
‘바람난 가족’ ‘그때 그 사람들’ ‘하녀’ ‘돈의 맛’과 달리 젊은 관객을 위해 만들어진 ‘나의 절친 악당들’은 웃으면서 가볍게 지나칠 법한 메시지를 임상수 감독이 의미를 부여하면서 한층 무게감 있게 표현됐는데.
2평도 안 되는 좁은 고시원 방에서 대학 다니고 취업하고 그럼에도 갚아야 할 빚이 수천만원인 인턴사원 지누(류승범 분)는 그렇지만 언제나 유쾌함을 잃지 않는다. 임 감독은 ‘나의 절친 악당들’을 통해 젊음이 가진 폭발적 에너지와 재기발랄한 유머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영화에선 지누와 나미를 중심으로 한 ‘절친 악당들’을 통해 재벌층의 회개를 예상했지만 오히려 기고만장함이 하늘을 찌른다. 그의 영화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일까?
“재벌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거 개뻥이지 않나. 포장이라는 소리다. 진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존중이다. 영화에서 가진 것 없는 약자이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지누와 나미는 끝까지 존댓말을 쓴다. 존중의 뜻을 담은 것인데, 한국사회와 권력층은 아직 약자들에게 모욕감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임 감독은 ‘나의 절친 악당들’ 연출 의도에서 이렇게 전했다.
“저항하지 않는 젊음은 비참하다고 생각한다. 고분고분하라는 대로 말 잘 듣고 사는 건 미친 짓이다. 존경할 점이라고는 하나 없는 꼰대들에게 머리 조아리고, 무릎 꿇고 살 수밖에 없는 빚더미 속 이 시대 젊은이들. (중략) ‘나의 절친 악당들’은 진짜 악당을 선언한 지누와 나미를 통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폭폭한 가슴을 통쾌하게! 시원하게! 뻥 뚫어주는 그런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
또 이어 그는 ‘영화는 판타지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저항하고 싶은 마음만은 깊이 새겨둘 필요가 있다’를 덧붙이며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한편 임상수 감독 연출 신작 ‘나의 절친 악당들’은 지난달 25일 개봉, 절찬 상영 중이다. 청소년관람불가, 러닝타임 109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