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안 골목 풍경.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여파로 방문객이 현저히 줄어 한산한 분위기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외국인 관광객 방문 뚝
내국인도 발길 끊어져
“수백만원 월세 못 이겨
문 닫는 가게 속출”

‘골목 상권’ 노점 타격 커
“빨리 종식되지 않으면
서민은 다 죽어요”

[천지일보=임문식 기자] “사람이 없어요. 사람이…”

지난달 29일 오후 12시 30분 서울시 강동구 강동성심병원 맞은편 상가. 작은 매점을 운영하는 김모(50)씨는 하소연부터 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로 강동성심병원이 폐쇄되면서 가게에 손님 대신 파리만 날리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병원 주변에 있는 약국은 물론 식당도 텅 빈 상태로 손님을 기다렸다. “평소 매출이 100이라면 지금은 10도 안 돼요. 장사가 안 되지만, 심심해서 나와 있는 거죠” 그의 매점처럼 강동성심병원 한 곳을 주 매출원으로 하는 주변 상가들이 처한 상황은 대부분 이렇다. 병원 폐쇄로 환자와 방문객의 발길이 뚝 끊기면서 매출이 곤두박질쳤다. 김씨는 “매점을 22년째 운영하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메르스 사태로 불어 닥친 경제의 찬바람이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메르스 사태가 진정 국면이라는 일각의 분석과 달리 생업 현장에서 느끼는 경기는 여전히 냉랭하다. 메르스 사태가 끝나더라도 매출 회복에 필수인 외국인 관광객이 다시 들어오려면 몇 개월은 더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업계를 더욱 암울하게 하고 있다.

강동성심병원 부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최모(53)씨는 병원 폐쇄 이후 식당 문을 아예 닫았다가 이날부터 다시 열었다. 월세는 계속 나가지만, 인건비라도 아끼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식당 문을 열면 손해지만, 손님들이 아예 끊길까봐 할 수 없이 열어 놓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메르스 피해와 관련해 여러 경제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그 역시 최씨에겐 그림의 떡이다. 최씨는 “정부 지원도 결국 대출인데, 빚으로 떠안는 것”이라며 “결국 우리가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대표적인 재래시장인 남대문시장도 메르스 사태의 여파를 피해가지 못했다. 이날 정오쯤 방문한 남대문시장 거리는 한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 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은 눈에 간간히 띌 정도였다. 손님이 물건을 고르거나 점원과 흥정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내국인 발길마저 뜸한 상황. 남대문시장의 북적거리던 풍경은 온데간데없어졌다. 일본어나 중국어로 호객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몇몇 점원은 가게 앞에 선 채 지나가는 사람들을 힘없이 응시했다. 대부분의 가게 주인은 빈 가게 안을 지키거나 가게 문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메르스 사태가 만든 일상적인 풍경이다.

남대문시장에서 신발 가게를 하는 안영석(58)씨는 “6월 한 달 내내 매출이 1/3도 안 되는데, 월세는 그대로 나가고 있어 골치가 아프다”며 얼굴을 찡그렸다. 벌써 점심때가 됐지만, 아직 개시조차 못했다. 남대문시장의 가게가 대부분 이런 상황이라고 한다. 그는 “작년 세월호 사건 때부터 경기도 안 좋은 마당에, 메르스 사태로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했다.

자영업자 중에서도 골목 상권인 노점이 느끼는 충격의 여파는 더 크다. 정부 지원의 손길마저 닿지 않아 그야말로 생계 위기에 내몰린 것. 남대문시장 앞에서 호박엿 노점을 하는 김진원(69, 구로구 구로동)씨는 “평소 5~6만원은 팔았는데, 지금은 2만원어치도 못 팔고 있다”며 “점심 사먹고 차비로 쓰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했다. 김씨에 따르면 남대문시장에서 메르스 사태 이후 문 닫는 가게가 속출하고 있다. 월세가 몇백만원씩 나가니 지금의 매출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잡화상인 고모(80, 여, 마포구 신정동)씨는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기만 하고, 물건을 사지 않는다”라며 “어쩌다 단골손님이 오면 하나라도 팔려고 나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인들과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주변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다. 길거리에서 호떡을 파는 박효순(56, 여)씨는 점심때가 됐지만, 손님을 한 명도 받지 못했다. 12년째 호떡을 팔았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한다. 옆으로 줄지어 서 있는 다른 노점들도 태반이 개시하지 못한 상태였다. “진짜 심각해요, 우리가 제일 밑바닥인데, 타격이 제일 커요. 메르스가 빨리 종식되지 않으면 서민은 다 죽어요.” 박씨의 손길이 분주한 철판 위엔 팔리지 못한 호떡들이 쌓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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