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
정호승(1950~ )
종소리에도 손이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처럼 긴 손가락이 있다
때로는 거칠고 따스한 어머니의 손이 있다

어디선가 먼 데서 종소리가 울리면
나는 가끔 종소리의 손을 잡고 울 때가 있다
종소리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별을 바라볼 때가 있다

그 별이 사라진 곳으로
어머니를 따라
멀리 사라질 때가 있다

[시평]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지만, 1960년대만 해도, 새벽이면 도시의 마을에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새벽기도를 알리는 교회의 종소리가 새벽 공기를 가르고 은은히 온 동네로 퍼져가곤 했다. 그러나 동네 곳곳에 많은 교회가 생기고, 이 새벽 종소리가 종소리가 아닌 스피커를 통한 새벽 공기를 쩡쩡 울리는 음악으로 바뀌어 경쟁적으로 울리게 되고, 그래서 새벽수면을 방해하는 소리가 되면서, 이 새벽 종소리도 우리의 주변에서 사라졌다. 그래서 이제는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소리가 되고 말았다.

종소리는 은은해야 한다. 어디 먼 데에서 들려오는 소리인 양. 그래서 그 종소리로부터 우리를 감싸주는 거칠지만 따뜻한 어머니의 손길을 느끼기도 하고, 그 종소리가 가리키는 머나먼 창공 너머로 은은히 비추는 별을 바라보기도 할 수가 있다. 하늘 어느 한 자락을 붙들고 내려오는 소리 마냥, 은은히 번져오는 종소리. 그 종소리를 들으며 천상 어딘가에 계실 듯한 어머니의 은근한 품을 떠올릴 수 있던, 그 시절. 이제는 도심 어디에서고 들을 수 없는, 끝내 사라지고 만 새벽 종소리. 그러한 종소리, 문득 그리워진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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