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문인협회 김덕권 명예회장

유유상종(類類相從), 초록동색(草綠同色) 인심은 처처동(處處同)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또 ‘가재는 게 편’이라는 속담도 있지요. 됨됨이나 형편이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리게 돼 서로 사정을 봐주며 편을 들어준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내 편 네 편으로 편 가르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내 편이면 옳고 네 편이면 그르다고 쉽게 결정해 버립니다.

요즈음 여야(與野)관계를 보면 서로 자기네가 옳다고 죽기 살기로 비난합니다. 비난을 통해서는 좋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비난을 잘 하는 그런 사람 곁에는 언제나 비난하는 사람들이 모이게 됩니다. 그러나 비난을 통해서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비난하는 사람들의 문제는 자신을 비난하는 데도 익숙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남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황폐한 사막과 같습니다. 인간의 삶은 거울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은 자신의 생각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까닭 없이 남을 비난하거나 무슨 일을 만나든지 비판하기를 일삼는 사람은 참으로 사람을 사랑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자신을 비난하고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남을 비난하고 비판하기 쉽습니다. 자신을 존귀하게 여기고 참으로 아끼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존귀하게 여기고 아끼는 것입니다.

유유상종이란 말을 기억하십시오. 비난하는 사람들은 비난하는 사람들끼리 모입니다. 비난도 배우는 것입니다. 비난하는 사람을 가까이하다보면 비난하는 사람을 닮습니다. 흉보면서도 배우고 싫어하면서도 물이 듭니다. 비난도 습관입니다. 비난이 습관이 되면 인생이 어두워집니다. 비난이 습관화된 이들은 긍정적인 사람들, 밝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없기에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 곁에는 좋은 사람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지요.

모든 사람들은 서로 다르게 생겼습니다. 일란성 쌍둥이라도 가족들은 그 차이를 알아봅니다. 지문이 같은 사람이 없다는 것은 신비하기까지 합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은 겉모습뿐 아니라 어른이 돼 살아가는 모습도 제각각입니다. 좀 더 전문적으로 말한다면, 각자의 삶의 질과 수준이 다른 것이며 사회학적 용어로는 계층화라고 부릅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우‧열, 빈부의 격차, 학력의 차이, 그리고 성격의 차이까지도 포함됩니다.

인간이 이렇게 서로 다른데 왜 그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끼리끼리 극한적인 행동을 서슴지 못하는 것일까요? 결국 한쪽에 치우친 극단적인 사고와 이념, 정치, 종교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의 성공과 실패의 원인은 수도 없이 많겠지만 가장 우선적인 것은 개인이 타고나는 성격입니다. ‘성격이 운명이다’라는 격언은 사실입니다. 노력하고, 친화적이고, 원만하며 열심히 공부하는 성격은 크게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게으르고, 독선적이며, 학문을 멀리하면 고통스럽게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요?

그래서 그 원만한 인격을 길러내기 위해 인간이 종교를 필요로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모든 종교는 그 원칙에서 악을 미워하고 선을 행하라고 가르칩니다. 이렇게 치우치고 모난 성격의 사람들도 종교의 큰 가르침과 신앙생활을 통해 정화되고 순화됩니다. 그러나 모두의 기피대상이 되고 배제되는 인간이 공동체 안에서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은 거의 모두가 유유상종으로 끼리끼리 서로 내왕하며 살게 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조직폭력배이고, 사기꾼이이며, 정치패거리들로 생각됩니다. 좋은 친구를 사귀면 자기도 좋은 사람이 되지만 나쁜 친구를 사귀면 함께 악의 늪에 빠지기는 너무나 쉬운 것이지요. 인간이 어떤 친구를 선택하고 사귀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만큼 친구가 중요하다는 얘기이지요.

무엇을 고상(高尙)하다고 할까요? 사람의 성품이나 취향이 나타내는 높은 격(格)을 이르는 말이 고상일 것입니다. 고상한 인품을 ‘인격’이라고 말하는 게 그 때문입니다. 취미는 천태만상(千態萬象)이지만 그 안에 악이 있으면 안 됩니다. 우리의 취미생활 자체가 인간적으로 유익해야 되고 그 밀착과 집념이 사람을 키울 수 있고 살릴 수 있어야 됩니다. 나아가서는 그 취미생활이 모든 사람에게 덕(德)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누구도 혼자 살 수는 없습니다. 수없이 넘쳐나는 관계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기의 영역을 지키고 삶을 영위해야 하는 개인으로서의 이 경험들은 방패와 수단이 됩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게 그 말이지요. 인간이 원만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의 ‘인생관’이 뚜렷해야 됩니다.

인생관이란 무엇일까요? 사람이 인생의 의의나 목적, 가치 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자기 생각이나 견해를 말합니다. 인생관이 없으면 목적지가 없이 물결에 따라 표류하는 배와 같습니다. 언젠가는 좌초하거나 사고를 당해 침몰할 수 있지요. 우리들이 살아가야 하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는 것, 상대적으로 무엇이 더 가치 있는 것인가를 아는 것, 그것이 인생관이 아닐까요?

미국의 카네기 공대 졸업생을 추적 조사한 결과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성공하는 데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은 15%밖에 영향을 주지 않았으며, 나머지 85%는 인간 관계였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주위의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하찮다고 생각할 만한 작은 일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잘 챙겨서 여러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어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특히 ‘세 가지 방문’을 잘 했다고 합니다. 첫째 입의 방문, 둘째 손의 방문, 셋째 발의 방문이지요. ‘입의 방문’은 전화나 말로써 사람을 부드럽게 하며 칭찬하는 것이고, 용기를 주는 방문입니다. 그리고 ‘손의 방문’은 편지를 써서 사랑하는 진솔한 마음을 전달하는 것, 또 ‘발의 방문’은 상대가 병들거나 어려움이 있을 때 찾아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바로 이런 것을 잘 하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고 큰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어차피 우리는 남은 인생을 끼리끼리 놀다 가야 합니다. 똥은 똥끼리 모이고, 도인은 도인끼리 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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