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경성학교’ 이해영 감독 “소녀들, 30년대의 슬픔 표현해”
[인터뷰] ‘경성학교’ 이해영 감독 “소녀들, 30년대의 슬픔 표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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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5일 본지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1/2 ROUND 카페에서 이해영 감독과 영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촬영: 이혜림 기자).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이현정 기자] 영화의 시작은 어쩌면 단순했을 수도 있다. 흐드러지게 아름다운 벚꽃 아래서 한 소녀가 양손에는 피 묻은 벽돌을 들고 있는, 서정적이면서도 미스터리한 한 소녀에서부터 출발했다. 하지만 영화는 곧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미장센을 선보이며 개봉과 동시에 1020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가장 순수한 소녀들이 미스터리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담은 영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나라도 잃고 정체성도 없어진 1938년 조선의 소녀들, 외부와도 단절된 요양 기숙학교에서 소중한 친구들이 한 명씩 사라지는 미스터리한 일들을 겪으면서 알게 되는 가슴 아픈 사연을 그린 영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을 연출한 이해영 감독은 ‘1930년대’와 ‘소녀들’은 닮았다고 전했다.

“시대의 아픔과 비극을 고발하고 싶은 작품은 아니었다. 가장 비극적인 시절에 이렇게 아련할 정도로 아름다운 소녀들이 살았다는 메시지가 더 강하다. 이 시절이 아니면 더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았을 법한 소녀들이라서 아직도 이 이야기가 아련한 것 같다.”

1938년이면 일제강점기 시절, 나라도 없고 정체성까지 찾지 못해 모두가 압박적인 삶을 살아야 할 때이다. 이 시절에 한참 성장기를 겪으며 자라나는 소녀들이 자연스럽게 부딪히게 되는 시대적 좌절과 아픔을 경성학교라는 시공간을 통해 폭발하게 되는 아련한 이야기.

이해영 감독은 지난 15일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인근 카페에서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영화 전반에 걸친 에피소드를 전달했다.

‘천하장사 마돈나’ ‘페스티발’ 이후로 5년 만에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을 선보이는 이해영 감독. 이번 작품의 원제는 ‘소녀’였다고 한다. 시나리오 출발점부터 마지막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모든 것이 소녀에 초점이 맞춰졌던 작품이었던 만큼 이해영 감독 내에 퍼져있던 ‘소녀적 감성’을 최대한 끌어올려 연출하기도 했다고.

“‘소녀’를 입에 달고 살았다. 미술팀, 촬영팀, 조명팀한테도 계속 ‘소녀, 소녀’ 했던 것 같아. 거의 집착적으로 소녀를 외치며 연출한 것 같다(웃음). 영화가 억압받던 30년대를 배경으로 소녀들의 희생을 담고 있어 매우 험악한 내용을 어떻게 관객에게 쉽게 넘길 수 있는 수프처럼 다가갈 수 있을까 생각한 것이 소녀적 미장센이었다. 사실 30년대 배경으로 성공한 영화가 없어 관객도 이것이 부담스럽게 다가올 수 있어 아름답고 매혹적인 미스터리 스릴러로 다가가려 노력했다.”

이번 영화가 독특한 것은 무엇보다 장르적 구분이 애매할 만큼 소녀적 감성이 강하면서도 스릴러 요소가 도드라지는 것인데, 이를 두고 이해영 감독은 국내 영화계가 가지고 있는 ‘반전 강박증’에서 벗어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미스터리 장르, 심지어 코미디 영화도 국내 상업영화는 스토리상 반전을 가지고 있어야 하더라. 그런 반전 강박증에서 벗어나는 방식을 택하고 싶었다. 반전 없이 관객이 적극적으로 영화에 참여할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이려고 했다. 영화 보다가 ‘어! 뭐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허리를 곧추세우고 스크린에 몸을 더 당겨보는 방식을! 익숙하게 흐르다가 툭툭 틀면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반전 강박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는 이해영 감독, 혹자는 실험영화에 도전하고 있다는 평도 하지만 오히려 반전 강박증, 신파 강박증에서 벗어난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은 그동안 보편적인 스토리 전개방식을 보였던 기존 영화에서 유추할 수 있었던 뻔한 스토리 라인을 완전히 떨쳐냈다. 이에 더욱 새롭고 신선한 자극을 안겨주는 영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 지난 15일 본지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1/2 ROUND 카페에서 이해영 감독과 영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촬영: 이혜림 기자). ⓒ천지일보(뉴스천지)
보편적인 스토리 라인과는 다른, 다음 이야기를 유추할 수 없도록 새롭고 신선한 내용을 전달하고 있는 이번 영화에 스태프는 물론 배우들도 힘들었다고 이해영 감독은 전했다.

“이번 영화는 꾹꾹 눌러가고 쌓아가다가 마지막에 폭발하기 때문에 다들 다음 이야기를 예상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무엇보다 배우들이 힘들게 된다. 특히 박보영씨가 고생을 많이 했다. 영화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물이라 감정, 컨디션 등을 계속 체크하고 변화해 가야 해. 그렇다고 확확 바뀌는 게 아니라 서서히, 차츰차츰 변화하는 인물이라 연기하는 박보영씨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또 내가 집요하게 디렉션을 많이 줘 배우들이 속으로 욕했을 수도 있어(웃음).”

그동안 강단 있고 야무진 캐릭터를 선보였던 박보영이 이번 영화에선 병약하고 주눅 들어 있는 ‘주란’을 연기해 신선하다는 평이 압도적이다. 이제껏 보여주지 않았던 단면을 연기하기 위해서 박보영의 노력도 만만치 않았을 법한데, 이해영 감독은 “오히려 나를 위로해준 친구”라고 표현했다.

“박보영이라는 배우는 정말 대단하다. 놀랍고 신기할 정도다. 차츰차츰 느리면서 서서히 감정을 변화해야 하는데 그때그때 세세한 디렉션을 줬다. 예를 들어 ‘한번 뒤돌아볼 때는 이런 감정, 그리고 숨을 쉬고 다시 뒤돌아볼 때는 더 진화된 감정’을 보여 달라고 하면 해낸다. 놀랍고 신기한데 스스로가 캐릭터 이해력이 높아서 감독인 내가 기대거나 위로받을 때도 있었다. 가끔은 디렉션 이상의 연기를 해냈다. 감독이 ‘믿고 보는 배우’다. 내가 박보영씨한테 큰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

한편 놀랍도록 아름답고 아련한 박보영, 엄지원, 박소담 주연의 미스터리 영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은 지난 18일 개봉해 절찬리 상영 중이다.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9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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