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9일 부산 중구 중앙동3가 40계단길.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의 애환과 사연이 담겨 있다. 항구가 가까워서 물자를 옮기는 곳으로 많이 사용됐다. ⓒ천지일보(뉴스천지)
6.25전쟁 발발 65주년을 맞았다. 한국전쟁 당시 참혹했던 모습은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곳곳엔 전쟁의 상처가 뚜렷이 남아있다. 본지는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고,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고자 역사적 현장을 직접 찾아가 봤다.

전쟁나자 피난민 부산에 몰려
판자촌서 노점장사하며 생활
힘들지만 열심히 산 그 시대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한국전쟁 막바지인 1950년 12월 15~23일. 아군의 전세가 불리해지자 미 제10군단과 국군 제1군단은 흥남항구를 통해 약 10만명의 피난민을 부산으로 철수시켰다. 이는 바로 흥남철수작전. 전쟁으로 고향을 북녘에 두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많은 실향민이 생겼고 저마다 애끓는 사연이 심금을 울렸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 금순아 어디를 가고 길을 잃고 헤매였더냐 /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홀로 왔다 /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꿈도 그리워진다 /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中’-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는 한국전쟁 때 전국에서 부산으로 모여든 피난민의 애절한 사연을 그린 곡이다. 지난해 겨울 개봉한 영화 ‘국제시장’은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힘들게 살아왔던 시대를 그려 동시대를 살아온 부모세대는 물론 지난 역사에 관심 없던 젊은이들의 눈물샘까지 자극했다.

65년 전 부산에서는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지난 19일 찾은 부산역은 이전의 힘들고 가난했던 피난민들의 모습은 전혀 볼 수 없었다. 현대건축물의 특징이 두드러진 모습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은 피난민들의 최종 종착지로 전국의 피난민들이 열차에 몸을 싣고 내려와 정착하는 곳이었다. 많은 사람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부모, 형제들과 생이별을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 때문에 부산은 피난민들의 애환이 담겨있는 장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옛 부산역 자리에는 현재 중구 중앙동 무역회관이 자리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관광을 목적으로 찾는 부산 곳곳에는 힘겹지만 열심히 살았던 피난민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기자가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영화로 유명세를 치른 국제시장이다. 이 시장은 피난민들이 미군의 군용 물자와 부산항으로 밀수입된 온갖 상품을 장사하며 크게 형성됐다. 기계 공구·전자·의류·주방기구 등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도떼기시장이다. 현재는 총 6공구로 나뉘어 여전히 다양한 물품이 주종을 이루는 도·소매업 시장이다.

국제시장 입구 부산근대역사관을 지나 40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계단은 옛 부산역과 국제여객부두를 왕래하는 편의를 위해 설치된 계단이다. 계단 위로는 계단형의 집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특히 계단 양쪽으로 층층이 서 있는 건물들이 눈길을 끌었다.

▲ 영도대교 아래 공원에 있는 피난 가족의 동상이 힘들었던 당시 상황을 가늠하게 한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중구 일대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피난민들이 언덕배기나 산등성이에서 사는 판자촌이 즐비했다. 피난민들은 계단 주변에서 노점 장사를 하고, 아침·저녁으로 계단을 거쳐 물건을 팔고 사기도 했다. 본래 4m가량 폭이었으나 지금은 1m 정도로 좁아졌다. 중구청은 계단 아래에 ‘사십계단기념비’를 세우고 ‘40계단 기념관’을 개관했다. 당시 이산가족들은 ‘헤어지면 40계단에서 만나자’고 약속해 만남의 장소로 불렸다.

영도대교도 이산가족 상봉장소로 유명했다. 실제로 이산가족들은 영도대교에서 많이 상봉했다고 한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다리에서 떨어져 고단한 삶의 끈을 놓아버리기도 했다. 대교 아래에 있는 공원에 가보니 피난 가족의 동상이 당시 상황을 연상하게 했다. 침울한 동상의 표정을 통해 피난시절의 애환과 향수가 느껴졌다.

오늘날의 영도대교는 영도와 육지를 잇는 육상교통의 중추적 기능을 하고 있다. 공사 관계로 도개 기능을 복원 중이지만 오늘도 영도대교는 부산의 근현대 질곡의 역사를 간직한 역사현장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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