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입법부인 국회와의 정면충돌에 따른 국정운영 부담에도 불구하고 끝내 거부권을 행사했다. 정부 시행령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을 강화한 ‘개정 국회법’에 위헌요소가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박 대통령이 국회에서 통과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로써 여야 정치권에 적잖은 후유증이 예상된다.

대통령이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는 국회로 환부하고 그 재의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은 헌법적 권한이다(53조 2항). 다만 메르스 사태 속에 정쟁을 촉발시킬 수 있는 사안을, 그것도 민생관련 법안이 아니라 국회운영의 규칙을 정한 국회법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 적절한지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 또한 대통령의 판단인 만큼 존중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런 문제점을 충분히 감안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헌법에 따라 관련 절차를 밟을 차례이다. 헌법 제53조 4항에는 후속 절차를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재의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국회는 재의에 붙이고,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2/3 이상의 찬성으로 전과 같은 의결을 하면 그 법률안은 법률로서 확정된다.” 핵심은 국회가 재의에 붙여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재의에 붙이지 않고 어물쩍 폐기시키는 일은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자동 폐기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아예 재의에 붙이지 말고 6월 임시국회를 끝내면서 자동적으로 폐기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국민과 야당을 무시하는 전형적인 구태정치에 불과하다. 개정 국회법은 여야가 합의해서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킨 법률안이다. 게다가 내용도 국회운영에 관한 법률안이며, 이마저도 청와대 심기를 고려해서 정의화 국회의장 중재로 한번 수정한 법안이다. 그리고 개정 국회법은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통제권을 강화한 것이 핵심 내용이다. 이런 법안을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고 해서 집권 새누리당이 지레 겁을 먹고 꼬리를 내린다면 어찌 국민의 대표 기관인 입법부의 구성원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새누리당은 정정당당하게 국회 본회의를 통해 재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정의화 국회의장도 헌법 규정대로 절차를 밟겠다고 밝혔다. 재의에 붙여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표가 나올지 아닐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헌법적 절차를 밟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헌법에 위배되는 요소가 있다고 해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인데, 집권당이 그 헌법적 후속 절차를 짓밟는다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반칙이나 꼼수 같은 것은 금물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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