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4년 2월 대구 공군비행장에 도착해 내리기 전 비행기 날개에 내려와 있는 모습이다. 옆에 공군비행사가 세계적 대스타를 태우고 왔다는 자부심 때문인지 무척 설렌 표정으로 환하게 웃고 있다. 금발의 머리가 바람에 날려 손으로 정리하는 듯한 동작을 하고 있는 마릴린 먼로는 3년여 만에 다시 찾은 한국 공기를 마시며 당시 자신의 지위에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사진제공: 정성길 명예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 공연 중에 마릴린 먼로가 사인해 주고 있는 모습이며, 하단에 친필 사인이 있다. (사진제공: 정성길 명예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세기적 섹시스타 대명사, 1950년대
추운날씨에도 열정으로 최선 다해 위문공연
부상당한 병사 다리에 사인까지 ‘자상함’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세기적 섹시스타 아이콘이자 상징인 배우 마릴린 먼로(1926~1962년)가 1950년대 한국전쟁에 참여한 주한미군을 위문하고자 내한한 모습과 함께 친필 사인이 들어간 사진이 최초로 천지일보를 통해 공개된다.

공개되는 사진은 총 6장으로,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을 통해 입수됐다. 사진에는 마릴린 먼로가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2월 주한미군 위문 차 내한했을 당시 모습이 담겨 있다. 이 중 세간에 이미 공개된 사진도 포함돼 있으나 먼로의 친필사인이 함께 들어간 사진이라는 점에서 희귀한 사진이다.

세간에는 먼로가 한국전쟁이 끝난 후인 1954년에만 내한한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으나, 먼로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혹은 1951년 초)에도 앞서 내한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는 많지 않다. 먼로는 1953년 영화 ‘나이아가라’에서 주연을 맡아 폭발적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고, 곧바로 후속작인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를 통해 전 세계적인 섹시배우로 거듭난다. 금발의 머리를 출렁이며 분홍색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는 먼로의 모습은 전 세계 남성들을 설레게 했다.

바로 이러한 배경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먼로가 1954년에만 내한한 것으로 알고 있는 이유다. 먼로가 1차 내한했을 때는 일약 대스타가 되기 전이었다. 그래서 주목받지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 한국전쟁이 한창 치열하던 때에 먼로가 위험을 무릅쓰고 위문공연을 위해 내한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이슈가 될 만한데도 불구하고 주목받지 못했다면 먼로의 인지도가 당시 어떠했는가를 가늠케 한다.

1953년이 먼로가 전 세계적 인기를 누리던 절정기였고, 먼로는 1954년 1월 14일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타자 조 디마지오와 결혼을 하면서 세계적인 화제가 된다. 메이저리그 56경기 연속안타라는 불멸의 기록을 세운 전설적 타자와 20세기 최고의 섹시 아이콘 배우의 결혼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역사의 한 페이지다. 먼로가 두 번째 내한했을 때가 디마지오와 결혼하고 일본으로 신혼여행을 왔다가 먼로만 미군들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으니, 그 열기와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능히 알 수 있다.

따라서 6.25전쟁에 참전했던 미국 종군기자들도 먼로의 위문공연 촬영을 위해 투입됐고, 이로 인해 자료를 남긴 것이다. 천지일보는 이들 종군기자가 남긴 6.25사진 자료를 이미 전국순회를 통해 단독 최초 공개 중에 있다.

정성길 관장에 따르면 종군 기자들이 먼로를 밀착 취재했고 사인까지 직접 받아 사진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사진을 인화한 뒤 사인을 받은 것인지, 아니면 사인 받은 것을 사진 인화할 때 넣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먼로의 흔히 볼 수 없는 친필 사인이 들어갔다는 것만으로도 귀중한 사진이다. 먼로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물품이 경매에서 거액에 팔릴 정도이니 이 사진의 가치는 설명이 굳이 필요 없다.

먼로는 1954년 2월 대구 동촌 공군비행장으로 입국해 4일간 대구, 동두천, 인제, 서울 등지 미군부대를 돌며 위문공연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공연 의상을 입은 마릴린 먼로가 깁스한 병사 다리에 완쾌를 기원하며 사인을 해주고 있다. 세계 최고 섹시스타에게 이러한 대접을 받고 있으니, 이 병사는 부상당한 게 오히려 불행이 아니라 엄청난 행운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 옆에 병사가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듯하다. (사진제공: 정성길 명예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 대기실에서 마릴린 먼로가 잠시 두꺼운 옷을 입어 몸을 따뜻하게 하고 있다. 발 옆에는 난방기구가 있다. 외투에는 각각의 계급장과 부대마크, 배지 등을 달고 있다. (사진제공: 정성길 명예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첫 번째 사진은 대구 공군비행장에 도착해 내리기 전 비행기 날개에 내려와 있는 모습이다. 옆에 공군비행사가 세계적 대스타를 태우고 왔다는 자부심 때문인지 무척 설렌 표정으로 환하게 웃고 있다. 금발의 머리가 바람에 날려 손으로 정리하는 듯한 동작을 하고 있는 먼로는 3년여 만에 다시 찾은 한국 공기를 마시며 당시 자신의 지위에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두 번째 사진은 공연 중에 먼로가 사인해 주고 있는 모습이며, 친필 사인이 들어가 있다.

세 번째 사진은 공연 의상을 입은 먼로가 깁스한 병사 다리에 완쾌를 기원하며 사인을 해 주고 있다. 세계 최고 섹시스타에게 이러한 대접을 받고 있으니, 이 병사는 부상당한 게 오히려 불행이 아니라 엄청난 행운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 옆에 병사가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듯하다. 아울러 대스타임에도 병사들을 일일이 만나 위문하는 먼로의 모습을 통해 겸손함과 자상함을 엿볼 수 있다.

네 번째 사진은 대기실에서 먼로가 잠시 두꺼운 옷을 입어 몸을 따뜻하게 하고 있다. 발 옆에는 난방기구가 있다. 외투에는 각각의 계급장과 부대마크, 배지 등을 달고 있다.

 

 

▲ 마릴린 먼로가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외투를 한쪽 어깨에 걸친 채 활짝 웃고 있다. 그리고 신발 위에는 종군기자들이 찬 것과 같은 종류의 발목 보호대를 차고 있다. (사진제공: 정성길 명예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 군인들이 털모자를 쓰고 있어 추운 날씨가 예상되는데, 마릴린 먼로가 추위에 아랑곳없이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의상을 입고 웃음을 잃지 않은 채 최선을 다해 위문공연에 임하고 있다. (사진제공: 정성길 명예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다섯 번째 사진은 먼로가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외투를 한쪽 어깨에 걸친 채 활짝 웃고 있다. 그리고 신발 위에는 종군기자들이 찬 것과 같은 종류의 발목 보호대를 차고 있다. 이 사진 역시 친필 사인이 들어가 있다.

마지막 사진은 먼로가 열창하고 있는 모습이다. 군인들이 털모자를 쓰고 있어 추운 날씨가 예상되는데, 먼로는 추위에 아랑곳없이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의상을 입고 웃음을 잃지 않은 채 최선을 다해 위문공연에 임하고 있다.

한편 1955년 개봉한 ‘7년 만의 외출’에서 먼로는 백색 드레스를 입고 통풍구 위에서 치마가 날리는 이 장면 하나로 최고 섹시 아이콘의 대명사가 된다. 반면 조 디마지오와는 9개월 만에 파경을 맞는 계기가 된다.

이후 먼로는 세 번의 결혼 실패와 약물 중독에 빠지다 1962년 8월 5일 의문의 죽음을 당해 36세 나이로 요절한다. 당시 먼로의 죽음은 자살로 판정이 났지만, 지금까지도 숱한 타살설 제기로 논란이 되고 있다.

 

 

▲ 6.25 당시 참전한 미국 종군 기자들의 모습 (사진제공: 정성길 명예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 전장에서 단독군장으로 카메라를 같이 들고 있는 미국 종군 기자의 모습이다. 다리에 발목 보호대를 차고 있으며, 마릴린 먼로가 차고 있는 것과 동일하다. (사진제공: 정성길 명예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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