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가장 고귀한 꽃 한 송이가 마르지 않는 눈물을 쏟아낸다. 고종의 막내딸이자 조선의 마지막 황족, 사람들은 그녀를 ‘덕혜’라 불렀다. 이 책은 일본에 강제로 끌려갔던 덕혜의 ‘한’을 절절하게 담아낸 소설이다.

1912년, 고종이 가장 총애했다는 어린 핏덩이가 첫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가 평생 짊어지고 갈 가장 ‘큰 죄’가 됐다. 이미 고종의 나이는 예순. 국권을 잃고 나라를 되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또 뛰어 봤지만 사사건건 칼날을 번뜩이는 일제의 압력에 모든 것은 ‘벽’이 되고 말았다.

덕혜를 위해 즉조당이라는 유치원까지 마련한 고종은 결국 1919년 죽음을 맞이했고, 어린 덕혜는 그렇게 소중한 사람들을 하나둘씩 자신의 기억에 묻어 갔다. 그리고 그 그리움들은 가슴을 찢어대는 아픔의 편린이 되어 평생 동안 덕혜의 주위를 악몽처럼 맴돈다. 나라를 잃은 슬픔, 조국을 잃었기 때문에 가족을 잃은 슬픔, 그리고… 조국이 없으면 자아를 쓰다듬을 수 없는 그 아련함이 그의 마음을 할퀴고 또 할퀴었다.

열세 살, 꽃보다 아름다운 나이… 선진문물을 배운다는 아름다운 단어로 점철된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강제로 일본에 끌려간 덕혜는 ‘조센징’이라는 노골적인 급우들의 비아냥에도 반듯한 자세를 잃어버리지 않는다. 학교를 방문한 일본 황녀를 향해서 절하기를 거부하던 덕혜는 “나도 대한민국의 황녀다”라고 말하며 총명한 기개를 잃지 않았다.

그러나 망국의 한과 일제의 감시에 지친 그녀의 마음은 세월이 흐를수록 허물어져 갔고 일본인 남자와 강제로 결혼한 이후엔 더 심해졌다. 결혼 전부터 정신분열증을 앓았던 덕혜는 자신의 외모를 꼭 빼닮은 딸아이가 태어나면서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정혜’와 ‘마사에’라는 두 가지 이름을 갖고 태어난 딸은 반은 ‘조선인’이라는 성장기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 불만을 어머니에게 쏟아냈다. 딸과 조국에 같이 돌아가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었던 덕혜는 이 일 후 정신병원에 갇히게 됐고, 평생을 미친 여자처럼 살아가게 됐다. 아니 어쩌면 미치지 않고서는 살아가지 못했을 이 세상을 등진 것이리라….

저자는 이 책 한 권을 세상에 펼쳐내기 위해 수십 회에 걸친 고증을 했다고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썼다”는 작가의 마음을 울리는 사명감이 심연을 깊이 파고든다. 함축된 언어와 섬세한 감정 표현이 오롯이 피어나는 작가의 절절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누구보다 가녀리고 병약한 여인, 그러나 누구보다 강해야만 했던 여인… 조국이 곧 자신이었던 여인, 그리고 끝내 돌아온 조국에서 영원히 잊혀져버린 여인…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해도 그녀는 조선의 황녀였다.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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