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2월 26일 아랍에미리트연합국(UAE)을 전격 방문한다고 했을 때 승리가 준비되어 있기에 그럴 것이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말의 불안감과 초조감을 달래기 어려웠다. 이 대통령이 UAE를 방문하는 동안 기민한 세계의 외신들도 미국 돈으로 4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47조 원짜리의 세기적인 원전 수주의 향방에 대해 입을 닫고 있었다. 그것이 더욱 우리를 초조하게 만들어 주었다. 로이터가 원전 수주 경쟁에서 한국이 우위에 있는 것 같다는 간단한 추측성 기사를 내보낸 것뿐인데 근거가 희박한 그것을 믿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UAE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마친 후 이 대통령이 원전 수주 성공을 발표했을 때 긴가민가 숨죽이고 있었던 우리는 드디어 환호성을 터뜨릴 수 있었다. 외신들은 한국이 수주국이 된 것에 대해 ‘surprise choice(놀라운 선택)’라며 놀라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의 경쟁 상대국들이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우리보다 수십 년 앞서간 쟁쟁한 원자력 선발 선진국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에 비해 우리는 세계 원전시장에서는 신출내기에 불과하다. 이런 어려운 싸움에서 우리가 이긴 것은 원전의 기술력, 안전성, 가격경쟁력, 공사기간 등의 기술적 측면에서만의 승리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우리 정부가 일구어낸 승리다. 정확히 말하면 이명박 대통령의 CEO(최고경영자) 경륜과 감각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47조 대박을 거머쥐는 이번 원전 수주전은 처음부터 국가 간 총력전이었다. 가장 우세한 입장에 있었다고 보여지는 프랑스의 경우 사르코지 대통령이 지난 5월 UAE를 방문하는 등 일찍부터 국가 정상이 수주전을 진두지휘하고 나섰다. 미국, 일본 등도 드러나게 또는 물밑에서 정부가 총동원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들 나라들은 우리보다 월등한 국력과 영향력을 적절히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함으로써 우리를 따돌릴 것만 같았다. 그들이 내세운 것은 우리보다 더 유리한 입장에서의 군사․경제․외교․기술 분야에서의 부가적이며 전폭적인 협력과 지원의 제의였다. 그럼에도 UAE가 우리를 깜짝 선택한 것은 우리 기술력과 안전성이 세계수준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정성을 다하는 세일즈 방법에 감동하고 우리의 제의가 그들의 국가전략과 조건에 가장 잘 맞아떨어진다는 판단에서였을 것이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UAE의 공식 발표로는 한국형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높은 평가가 한국을 수주국으로 선택한 이유라고 했는데 원전의 생명인 안전성을 내세우면 탈락국들도 섭섭하고 허탈은 하겠지만 달리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번 수주전에서 이렇게 한국형 원전의 안전성이 평가받음으로써 앞으로 있을 다른 수주 쟁탈에서 경쟁국에 비해 유리한 어드밴티지(advantage)를 확보한 셈이다. 어쨌든 우리는 집념으로 일군 대박을 안고 경인년 새해를 기분 좋게 맞이하게 됐다. 지금부터 30년 동안 녹색 성장의 붐을 타고 조성될 1천 2백 조의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원전 수주 시장에 새내기인 한국이 불쑥 새 강자로 등장했다. 정확한 계산이 있어 하는 얘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앞으로 1백 년 먹거리는 이 원전 시장이 우리에게 제공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번에 따낸 400억 달러 원전 공사만 해도 NF소나타 1백만 대, 30만 톤 초대형 유조선 1백 80척을 수출한 금액과 같은 것이라니 향후 원전 시장이 우리에게 가져다 줄 경제적 부가가치가 어떠할지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즐겁다. 대통령 말대로 우리에게 천운과 국운이 온 것 같다. 이번 일을 계기로 문화 예술이 이루어낸 한류와 같이 세계 시장을 제패하는 원전의 한류, 과학 기술의 한류를 만들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기후정상회의에서 돌아온 지 1주일 만에 이루어진 이명박 대통령의 이번 1박 2일 UAE 방문은 입술이 터질 정도의 강행군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와 우리 정부, 그리고 원전 수주 관계자들이 일체가 돼 그린 그림의 마지막 눈동자를 그려 넣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의 마지막 손질로써 결코 잊지 못할 여행이 됐을 것이다. 원전 수주 경쟁의 향방이 엎치락뒤치락 하는 가운데 대통령은 지난 11월 한승수 전 국무총리를 특사로 정부 관련 부처 장관들을 포함한 대규모 세일즈 사절단을 파견했다. 동시에 자신은 직접 UAE 원전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실세 왕세자와 6번이나 전화통화를 하는 등 자신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한 것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세일즈의 맥을 짚었다. 그렇기에 형제국이라는 인식을 공유할 만큼 유대를 엮어 내고 이로써 불리한 경쟁을 역전시킬 수 있었다. 누가 뭐라 해도 역사적인 쾌거다. 이런 쾌거를 정파적 이해관계로 엇갈리게 재단하려는 것은 잘못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