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신경숙이 또 다시 표절 의혹에 휘말렸다. 표절 의혹을 제기한 소설가 이응준씨는 “신씨가 1996년 발표한 단편 ‘전설’이 일본 탐미주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1925~1970년)의 소설 ‘우국(憂國)’을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한국 문단 이제는 ‘침묵의 카르텔’에서 벗어날 때
출판사 창작과 비평, 작가 옹호 입장 바꿔 사과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침묵의 카르텔’이 대한민국 문단의 화두로 떠올랐다.

카르텔(Kartell, cartel)이란 연합·동맹·제휴·연대와 같은 뜻을 갖고 있다. 쉽게 말해 ‘침묵의 카르텔’은 사회적으로 어떤 사안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들이나 관계자들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그 사안을 외면하고 있는 현상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 문단의 중요 작가로 자리매김한 소설가 신경숙. 베스트셀러 작가인 그가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소설가 이응준은 신씨가 1996년 발표한 단편 ‘전설’이 일본 탐미주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1925~1970년)의 소설 ‘우국(憂國)’을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이뿐 아니다. 이씨는 안승준 유고집 ‘살아는 있는 것이오’의 서문과 신경숙의 ‘딸기밭’, 마루야마 겐지의 ‘물의 가족’과 신씨의 ‘작별인사’ 등을 비교하면서 표절 주장에 힘을 실었다.

특히 신씨의 단편 ‘전설’에 대해서는 “의식적으로 도용하지 않고는 절대로 튀어나올 수 없는 문학적 유전공학의 결과물”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다른 문인의 표절을 적시함으로써 일종의 내부 고발자가 돼 버려 자신의 문단생활을 망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한국 문단에 ‘침묵의 카르텔’을 만들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사실 신경숙 작가에 대한 표절 의혹이 제기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999년 문학평론가 박철화 중앙대 교수에 의해 신씨의 표절 혐의가 공개적으로 제기된 바 있다.

당시 박 교수는 신씨의 대표적인 장편소설 ‘기차는 7시에 떠나네’와 단편 ‘작별인사’가 각각 프랑스 소설가 파트릭 모디아노와 일본의 마루야마 겐지의 작품을 표절했을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몇 차례에 걸친 표절 의혹과 최근 불거진 표절 시비와 관련 신씨는 “오래전 ( 미시마 유키오 작가의) ‘금각사’ 외엔 읽어본 적 없다. 해당 작품(‘우국’)은 알지 못한다”라며 “이런 소란을 겪게 해 내 독자분들께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일은 작가에겐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는 실정이다.

▲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논란에 작가 옹호적인 입장을 취했던 출판사 창작과 비평은 다음 날 바로 입장을 바꿔 사과하는 글을 출판사 홈페이지에 올렸다. 사진은 창작과 비평사 건물. (사진출처: 연합뉴스)

신씨의 표절 시비와 관련, 출판사 ‘창작과 비평’은 지난 17일 ‘창비 문학출판부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두 작품의 유사성을 비교하기가 아주 어렵다”며 표절 의혹을 부인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에 “작가 감싸기가 아니냐” “표절을 옹호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비판이 일자 ‘창작과 비평’은 지난 18일 입장을 바꿔 홈페이지에 공식 사과문을 올렸다.

창작과 비평은 “먼저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과 관련해 6월 17일 본사 문학출판부에서 내부조율 없이 적절치 못한 보도자료를 내보낸 점을 사과드립니다. 이로써 창비를 아껴주시는 많은 독자들께 실망을 드렸고 분노를 샀습니다”라며 “이 사태를 뼈아프게 돌아보면서 표절 문제를 제기한 분들의 충정이 헛되지 않도록,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자유롭고 생산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언제나 공론에 귀 기울이겠습니다”라고 사과했다.

이어 “현재 제기된 사안에 대해서는 작가와 논의를 거쳐 독자들의 걱정과 의문을 풀어 드리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내부 시스템을 재점검하고 필요한 후속조치를 마련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밝혔다.

한국 문단, 나아가 한국 사회의 끊이지 않는 표절 의혹. 어쩌면 한국 사회는 자기 집안사람들의 ‘표절’ 의혹에는 너무도 관대한 아량을 베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번 신경숙 작가 표절 시비를 기점으로 한국 문단 역시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논란에 작가 옹호적인 입장을 취했던 출판사 창작과 비평은 다음 날 바로 입장을 바꿔 사과하는 글을 출판사 홈페이지에 올렸다. (사진출처: 창작과 비평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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