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은 (사)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 지도위원

 
2015년 6월, 비극이 이 땅을 스쳐간 지도 어언 반세기! 6월이 되면 우리 민족으로서는 잊을 수 없는, 아니 잊어서는 안 될 그날이었다. 그것이 바로 ‘현충일’이요, 6.25 동란이다.

지금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은 143만㎡에 이르는 도심공간에 17만 1000여 호국영령들과 그 밖의 이름 모를 산하(山河)에서 흔적도 없이 산화한 수많은 순국선열들에게 경건한 마음으로 고개 숙여 명복을 빌어야겠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들의 오늘이, 오늘의 우리들이 있을 수 있었겠는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명복을 빌며 유가족을 위로·격려하고 나라사랑의 정신을 일깨워 보자. 우리가 누리고 있는 오늘의 이 자유와 평화와 번영은 이 분들의 희생정신과 애국정신, 호국정신 그리고 건국의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생각해 보자.

서울 국립현충원은 일제 때 나라를 되찾고 나라를 세우기 위해 목숨을 바친 대한독립군, 무명용사들, 임시정부 요인들, 애국지사들, 6.25 전쟁기간 중 목숨을 바쳤던 수많은 국군장병들, 가난에 몸서리치던 우리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되도록 헌신했던 국가유공자들이 있어 애국정신이 묻혀 있는 곳이다.

이처럼 나라사랑의 기본정신인 건국의 정신과 호국의 정신, 그리고 애국의 정신이 국립현충원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볼 때 우리 모두는 민족의 성역인 현충원을 사랑하고 아끼며 관심을 가지고 가꿔야할 것이다.

현충원은 아직도 일반 국민들에게 친숙한 장소라고 말하기는 힘든 것 같다. 주변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아직 한 번도 현충원에 가본 적이 없다는 답변이 허다하다. 참배 경험이 있다는 사람들 역시 학창시절 교사의 인솔에 따라 단체로 가봤다는 게 고작이다.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만 해도 부모가 자녀들 손을 이끌고 와서 자연스럽게 애국교육을 한다고 한다. 우리는 아직 그런 점에서 볼 때 미흡한 것 같아 아쉽다.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 외국 상급들이 국립현충원을 참배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외국 고위 인사들은 현충원을 참배에서부터 모든 일정을 시작한다.

많은 외국지도자들이 현충원을 찾은 뒤 전쟁의 아픔을 겪고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발전한 한국의 발전사에 대한 강한 인상을 받는다는 기사를 본다.

현충원은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이 모셔진 곳으로 국민들이 항상 가까이에서 경건하게 그 분들을 받들고 기리며 정신을 계승해야 하는 곳이다.

많은 국민들은 호국보훈의 달에만 단순히 노는 날로 여기고 나들이 가기에 급급하다. 국립현충원은 유족들에게 망자에 대한 ‘추모의 장’이요, 서울 시민은 ‘시민들의 쉼터’요, ‘호국공원’이다.

한편 국립현충원은 개나리 진달래 벚꽃 목련 벌개미취 등 우리 고유의 토종야생화와 오색단풍이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한다. 또 붉은 머리오목눈이 후투티 파랑새 청딱구리 등 도시에서는 좀처럼 보디 드문 새들도 서식하고 있어 자연생태학습에도 제격이다.

나는 70년대 전후 중학교 교사로서 국어교과서에 ‘이름 없는 별들(기행문 당시 국군묘지)’이라는 단원을 5년간 매해 6월이면 학생들에게 지도한 적이 있다. 그때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애국정신 귀감으로 지도한 인연이 되어 40년이 지난 지금도 서울 국립현충원을 다닌다.

내 주변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남녀노소·빈부귀천·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참배토록 권장한다. 직접 동행하면서도 도보로, 차량으로 이해를 돕기 위해 유명인사 또는 이승만 전 대통령 육성테이프, 기념사진 등 최선을 다해 나라사랑(충·효·예) 정신운동을 전개한다. 어떤 이는 내 서재에 국립현충원에 대한 자료 수집을 보고 미친 사람이라고 놀리기도 한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나의 삶속에 서울 국립현충원은 나라사랑 부모사랑 이웃사랑의 보물금고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까지 군부대 등 200여곳에서 초청 강연 요청을 받았으니 나의 삶, 나의 보람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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