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쟁의 기억 통해 평화의 소중함 일깨우고파”
[인터뷰] “전쟁의 기억 통해 평화의 소중함 일깨우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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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국민생활안보협회 양수근 회장(왼쪽), 김영석 상임고문(오른쪽)


(사)국민생활안보협회 양수근 회장, 김영석 상임고문
장진호전투 추모관… 공생공영(共生共榮)의 시대 알리는 팡파르
‘6.25평화공원’, 선대의 전쟁 거울삼아 후대에 평화 전파


[천지일보=고하늘 기자] “노병들이 다 떠나기 전에 우리 대한민국은 영웅들을 결코 잊지 않고 있었음을 보여줍시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이 지구촌의 신뢰할 수 있는 나라와 국민임을 참전국은 물론 세계인이 인정하도록 합시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을 드높이는 성업(聖業)입니다.”

6.25전쟁을 치른 지 65년이 지났다. 6.25전쟁은 역사상 가장 많은 국가가 단일 연합군으로 지원한 기네스 기록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당시 유엔파병 16개국, 의무지원 5개국, 물자지원 40개국, 전후복구지원 6개국 총 67개국이 남한을 수호했었다.

그중 유엔파병 16개국의 수많은 참전용사들은 이름도 모르는 낯선 이국땅에서, 만난 적도 없는 국민을 위해 초개같이 목숨을 버렸다. 그들의 희생과 공로를 잊지 않고 빛내기 위해 (사)국민생활안보협회 양수근(60) 회장과 김영석(68) 상임고문은 올해 초부터 6.25평화공원 및 장진호전투 추모관 건립위원회를 설립했다.

도움을 받았으니 이제 도움을 줘야한다는 김영석 고문은 이미 사비를 털어 참전국 중에 하나인 터키를 방문해 위문품을 전달하기도 했다. “부모 마음은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똑같거든요. 그 참전군들이 19살, 20살에 왔어요. 그 부모들이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어요. 우리는 그 고마움을 잊으면 안 됩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기적 만든 ‘장진호전투’

관객수 1400만명을 돌파한 ‘국제시장’의 첫 장면은 흥남철수작전의 전황이다. 이 흥남철수작전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장진호전투가 있었기 때문이다.

장진호전투는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해발 1200m의 산악지형인 개마고원 일대 장진호 서쪽 유담리에서 벌어진 전투다. 세계 2대 동계전투이자 미국 역사상 가장 힘들고 처절한 전쟁으로 손꼽힌다. 강풍과 15㎝ 이상의 적설, 낮 기온 영하 20도, 밤 기온 영하 32도로 체감온도가 영하 40도를 웃도는 혹한이었다.

당시 미 해병1사단은 이 참혹한 환경과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고 사령관 O.P 스미스(Smith) 소장의 지휘 아래 10배 병력의 적군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함흥지역 진출을 2주간이나 지연시켰다. 이로써 미 제10군단과 국군 1군단을 위기에서 구출했다.

결과적으로 10만명 이상의 유엔군과 1만 7500여대의 탱크와 중화기 및 차량, 35만톤 이상의 군수물자, 10만명에 가까운 북한 피난민을 구한 흥남철수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흥남철수작전은 지금도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도주의적인 구출작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양수근 회장은 “어떤 분들은 장진호전투를 패전전투라고 합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전투에서 미 해병1사단이 진짜 패전하고 포위됐다면 아군은 그대로 궤멸당하고 1.4후퇴 때 다 밀려나 다시 회복이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것을 막아준 것이 장진호전투입니다. 이후 유엔군이 공격 주도권을 회복하고 전세를 역전하는 데 큰 힘이 됐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장진호전투를 큰 의미의 전투라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전투이건만, 정작 자국민이 제대로 모르고 지내는 것이 못내 가슴 아프다는 양 회장과 김 상임고문. 두 공동위원장은 또한 우리를 위해 희생한 이들의 그 고마움과 은혜를 후손들도 잊고 지낼까 안타깝고 염려스럽다고까지 말한다.

이에 김 고문은 “이런 치열한 전투 속에서 목숨을 내던진 영웅들을 우리는 65년간 잊고 살아왔다”며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이들(참전용사)을 위해 추모관을 세우고 대한민국이 지구촌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나라임을 세계인이 인정하도록 만들고 싶다”고 다짐하듯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염치와 은혜를 아는 국민으로! 도리를 담아 ‘6.25평화공원’ 설립할 것

현재 미국에는 장진호전투 기념비가 3개나 있다고 한다. 이것도 모자라 장진호전투 참전병인 스티븐 옴스테드 미 해병대 예비역 중장 등은 기념비 건립을 위해 올 여름 버지니아 주 콴티코 해병대 기지 인근 대지를 매입할 예정이다. 반면 이런 추모비나 평화비 설립에 걸림이 많은 현 대한민국 상황에 두 위원장은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이에 고안해낸 것이 ‘6.25평화공원’이며 ‘장진호전투 추모관 설립’은 그 포부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순수한 민간 차원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 기부도 받지 않습니다. 뜻이 양분화 될까 하는 염려에서죠. 그것은 민간단체 뜻과는 맞지 않습니다. 단지 뜻이 있는 하나의 기업체를 정해 함께할 계획은 있습니다.”

현재 전쟁기념관이 있긴 하지만 전투에 대한 소개도 미흡하고 볼거리도 부족하다는 것이 두 공동위원장의 의견이다. 일단 그들이 구상한 6.25평화공원은 10만평 부지에 당시 상황 등을 상세히 알리는 장진호전투 추모관과 6.25전쟁 참전 16개국 및 적국이지만 중공군에 관해서도 기록전시와 조형물을 통해 상세히 알릴 수 있는 평화관을 건립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청소년들이 평화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도록 민족 수난사와 호국 의지를 다지는 호국수련원 등을 설치해 역사교육의 장으로도 활용한다고 한다. 이들은 또한 향토문화 및 한옥 등 볼거리와 놀거리까지 갖춘다면 관광산업으로서도 충분한 역할을 해낼 것이라 기대했다. 게다가 6.25평화공원이 세워지는 곳은 거제도다. 1만 4000여명의 북한피난민을 태웠던 매러디스 빅토리호가 안착한 곳이다. 그날이 바로 12월 25일이었다. 미군들은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그날을 기억한다.

김 고문은 “그 배에서 ‘김치 1~5’라는 다섯 생명이 피난 중에 태어났어요. 그 중 김치5가 아직도 살아계시고, 그도 장진호전투 추모관 건립을 바라고 있습니다. 거제도에는 포로수용소도 있기에 추모관 건립 장소로선 최적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거제도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겨집니다. 또 당시 참전국에 대한 보훈을 평화공원을 통해 널리 알린다면 나라 이미지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기업들의 해외진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입니다”라고 확신했다.

두 위원장은 평화공원 건립을 3년 안에 이룰 것이라 계획하고 있다. 이루는 것이 쉽진 않겠지만 두 위원장의 얼굴엔 포부를 향한 소망으로 가득했다. 그들의 행보가 아름다운 결실로 맺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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