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봉은 산봉우리가 아니라 ‘곶’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희망봉 기념 표지판 앞에서 여행 기사를 쓰고 있다는 기자를 위해 친절하게 포즈를 취해줬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차례>
(1) 케이프 타운 둘러보기
(2) 아파르트헤이트, 로벤 아일랜드, 그리고 축구
(3) 희망봉을 찾아서
(4) 케이프 타운에서 포트 엘리자베스까지 - 가든 루트
(5) 동서양과 아프리카의 만남, 더반




유럽인의 시각으로 본 ‘희망’… 아프리카 입장에선 침탈의 시작

남아프리카공화국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게 바로 희망봉이다. 우리는 흔히 ‘희망봉으로 우뚝 서다’라는 말처럼 희망봉을 어느 산봉우리로 말하곤 한다. 그러나 희망봉의 정식 영어 명칭은 ‘Cape of Good Hope’다. ‘Cape’는 바다 쪽으로 좁고 길게 뻗어있는 육지의 한 부분인 곶이라는 뜻이다. 장산곶이나 포항의 호미곶처럼 산이 아닌 삐죽 나와 있는 육지일 뿐이다.

▲ 희망봉에서 바라본 바다. 대서양과 인도양의 해류가 서로 만나 파도가 거세다고 한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하지만 ‘곶’이 아닌 ‘봉’이라는 말을 씀으로 인해 마치 이곳이 우뚝 선 산을 연상하게 한다. 마침 희망봉의 바로 뒤에는 제법 높은 언덕이 있어 오해하기 딱 좋다.

또 희망봉이 아프리카의 최남단이라는 상식을 갖고 있는데 이조차도 틀리다. 아프리카의 최남단을 보고 싶으면 희망봉에서 약 150km 정도 떨어진 케이프 아굴라스로 가야만 한다. 희망봉은 최남단이 아니라 최남서단이다.

하지만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지점이 희망봉이라는 것은 맞는 듯하다. 일부에서는 케이프 아굴하스가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곳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지리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대서양의 벤구엘라 해류와 인도양의 아굴라스 해류가 만나는 곳이 바로 희망봉 부근이라고 한다.

희망봉을 가려면 케이프 타운을 떠나 대략 두어 시간을 가야만 한다. 물론 희망봉이 위치하고 있는 곳으로 곧장 간다면 한 시간 내로 갈 수도 있지만 그러기엔 가는 길목에 볼거리가 너무나 많다.

▲ 요트와 함께 군함이 함께 정박해있는 시먼스 타운의 폴스 베이. 시먼스 타운은 옛날 식민지 시절 중심마을로 현재 남아공의 해군기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천지일보(뉴스천지)

1편에서 언급했던 매리너스 와프를 지나 20~30분 가면 시먼스 타운(Simon's Town)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유럽인들의 편향된 시각으로 된 아프리카 지명을 볼 수 있다.

우선 시먼스 타운 유래 자체가 옛날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유럽의 식민지 시절에 케이프 콜로니의 총독이었던 시먼 반더스텔의 이름을 딴 것이다. 케이프 반도에서 가장 유명한 마을인 시먼스 타운은 남아공의 해군 사령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종종 남극으로 가는 배가 떠난다고도 한다.

또 시먼스 타운을 끼고 있는 만(灣)의 이름이 ‘폴스 베이(False Bay)’다. 말 그대로 잘못된 곳이라는 뜻. 폴스 베이라는 이름도 이곳이 케이프 타운인줄 알고 왔다가 아니었다는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잘못 찾은 것은 바로 유럽인들인데 엉뚱하게도 예쁘고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 ‘잘못된 곳(False)’이라는 오명을 쓰고 말았다.

시먼스 타운은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곳답게 흑인들보다 백인들의 천국이다. 건물 하나하나가 아프리카가 아닌 유럽에 온 것과 같은 착각을 느끼게 만든다. 우리나라의 동해선처럼 해안가를 끼고 다니는 철도도 깔려 있어 친숙하게도 느껴진다.

서핑과 요트의 천국이기도 한 시먼스 타운에서 조금만 남쪽으로 내려간 볼더스 비치에는 아프리카에서만 서식한다는 자카드 펭귄들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러나 펭귄이라는 말에 낭만만을 생각하면 오산. 지독한 분뇨 냄새가 진동을 한다. 그래도 아프리카에서 펭귄을 본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하다.

▲ 케이프 포인트에서 바라본 희망봉. 앞에 보이는 산봉우리 밑으로 내려가야 진정한 ‘희망봉’이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이처럼 아름다운 곳이 아프리카가 아닌 유럽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희망봉을 중심으로 케이프 반도를 통해 유럽인들이 아프리카로 진출했기 때문이다.

1488년 바톨로뮤 디아스가 처음으로 발견, 원래 ‘폭풍곶(Cape of Storms)’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던 희망봉은 인도와 아프리카를 개척하던 포르투갈 주앙 2세가 인도를 이어준다는 의미로 바꾸면서 지금의 이름이 됐다. 그러나 유럽인의 시각에서만 말 그대로 ‘희망(Good Hope)’이었을 뿐 아프리카인의 시각에서는 유럽 제국주의의 침략과 침탈의 시작점이 바로 희망봉이 있는 케이프 반도다.

▲ 희망봉으로 가는 길목에는 개코원숭이, 타조 등 야생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희망봉 자체는 무척이나 아름답다. 테이블 마운틴에서 본듯한 넓은 바위 평야가 끝없이 이어진다. 이름 모를 꽃이 피어있고 개코원숭이, 거북이, 타조 등이 뛰놀고 있어 사자만 없을 뿐 사파리가 따로 없다. 개코원숭이나 타조를 보기 위해 많은 운전자들이 도로에서 서행하며 신기해하지만 개코원숭이 앞에서 창문을 열고 있다간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 케이프 포인트에서 바라본 바다. 푸른 바다의 물결에 눈이 시릴 지경이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산이 아닌 ‘곶’ 희망봉을 봤다면 바다를 바라보면서 왼쪽으로 가면 케이프 포인트와 함께 이곳에 서 있는 등대를 만날 수 있다. 희망봉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기 때문에 희망봉을 산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이곳을 희망봉으로 착각하기에 딱 좋다.

케이프 포인트로 올라가는 모노레일이 있긴 하지만 천천히 걸어서 올라가는 편이 딱 좋다. 아무리 천천히 올라가도 10분 내외면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모노레일 티켓 값이 아깝기도 하다. 케이프 포인트 정상에 올라서면 이미 폐쇄된 등대를 만날 수 있고 각 도시까지의 거리가 적혀있는 표지판도 있다.

그런데 케이프 포인트에는 등대가 두 곳이다. 케이프 포인트 정상에 있는 등대가 원래 있던 것이었지만 너무 높은 곳에 있다 보니 종종 구름이나 안개에 가려 제 역할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이 등대는 폐쇄됐고 다소 아래쪽에 지금도 사용 중인 등대가 있다.

또 케이프 포인트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흔히 유보트라고 부르는 독일의 잠수함 부대를 교란시키는 레이더 기지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의 레이더 기지를 생각하면 너무나 썰렁하고 조잡한 곳이지만 1940년대에 이런 것까지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해 보인다.

하지만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이곳이 다시 한 번 아프리카 침략사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씁쓸해진다.

▲ 케이프 포인트 정상에 세워져 있는 각 도시 거리 표지판. ⓒ천지일보(뉴스천지)
▲ 케이프 포인트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잠수함 부대를 교란시켰던 레이더 기지가 유적으로 남아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