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이벽온방. 조선 중종 때 의관 박순몽, 박세거 등이 임금의 명에 의해 온역(瘟疫: 전염병)치료에대한 약방문을 모아 엮은 의학 서적 (자료출처: 문화재청)

전염병, 나쁜 귀신이 몰고 온 것으로 생각
조정, 질병 예방 위한 의학서적 편찬·보급

[천지일보=이경숙 기자] “마을에 염병(染病)이 돌았다.”

현대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 시절, 세균이나 바이러스 감염에 의해 마을에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면 한 마을은 물론 나라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질병에 걸리면 손 한번 쓸 세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죽어 나갔으며, 그로 인해 나라의 정치와 경제적 활동이 마비되고 민심은 흉흉해졌기 때문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마을 여기 저기에서는 곡하는 소리가 들리고, 나랏 일을 돌봐야 할 대소신료들까지도 전염병을 두려워해 국정에 쉽게 나서질 않았다. 질병에 대한 정확한 원인도 알 수 없었던 시절, 그 두려움은 이를 데 없었다.

과거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존재를 알리가 없었던 우리 선조들은 전염병이라는 무시무시한 악재를 어떻게 대처하며 극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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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전염병을 역질(疫疾)·질역(疾疫)·여역(癘疫)·역려(疫癘)·시역(時疫)·장역(瘴疫)·온역(瘟疫)·악역(惡疫)·독역(毒疫)이라고도 불러왔다.

과거 열악한 의료 환경과 정확한 치료 방법을 몰랐던 시절, 전염병에 걸린다는 것은 곧 사형선고와도 같았다.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옮겨지는 염병은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해 온 마을을 잠식한다.

기록에 의하면 조선시대 처음으로 발생한 역병은 1396년(태조 5) 3월에 시작됐으며 “경축성역부 역려유행(京築城役夫 疫癘流行)”이라는 내용으로 보아 도성을 쌓기 위해 소집된 인부들이 크게 유행한 전염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전염병은 계속 퍼져나가며 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갔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1434년(세종 16) 5월에 이르자 “경상우도선군 상한온역다(慶尙右道船軍 傷寒瘟疫多)”라 하여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발진티푸스 또는 장티푸스가 발병했던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이 같은 전염병으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조정은 1525년(중종 20) 전염병 치료에 필요한 약방문을 모아 한글로 번역해 ‘간이벽온방(簡易辟瘟方)’이라는 의서를 편찬하고 전 지역에 보급했다. 또한 1550년(명종 5)에는 말라리아가 크게 유행해 황달이 심하자 조정은 ‘황달학질 치료방(黃疸瘧疾治療方)’을 만들어 널리 배포했다.

그 뒤에도 전염병은 그치질 않았다. 광해군 때에는 새로운 ‘벽온방(辟瘟方)’과 ‘벽온신방(辟瘟新方)’이 편찬됐다. 이러한 의서들에는 전염병 예방을 위한 사항들과 질병 치료를 위한 방법들이 기록돼 있어 많은 사람이 알도록 널리 보급했다.

또한 조선시대 조정은 전염병을 나쁜 귀신이 몰고 온 것으로 생각해 여단(厲壇)을 설치하고 하늘에 제사를 올려 귀신과 함께 전염병을 쫓고자 했다. 이렇듯 하늘에 의지해 드리는 제사가 바로 ‘여제’이다.

민간에서도 전염병을 이기기 위한 주술적 염원이 담긴 풍속들이 지역별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전북 진안의 경우 마을에 염병이 돌면 마을의 부녀자들이 밤에 몰래 이웃 마을에서 디딜방아를 훔쳐다가 마을 앞에 세워 놓았다. 그리고 디딜방아에 여자의 속옷을 거꾸로 입히고 술·과일·떡을 제물로 바쳐 염병이 멈추기를 기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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