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기 서원유학원 대표 ⓒ천지일보(뉴스천지)

‘한국문화 전도사’가 되다

[천지일보=박혜옥 기자] “노력한 만큼 결실을 맺는 나라. 이 얼마나 멋진 나라인가.”

지난달 26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위치한 서원유학원에서 만난 박용기 대표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때를 생각하며 이같이 말했다. 중국 사회주의 체제 아래 살아온 그가 처음 한국문화를 경험하면서 받은 충격이자 희열이었다.

대림동은 중국어 간판과 한국어 간판이 뒤섞여 있는 모습과 여기저기서 쉽게 들려오는 중국어, 조선족의 억양 등으로 이색적인 풍경을 만든다. 가히 ‘서울의 작은 중국’이라고 불릴 만했다.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는 액자들이었다. 자세히 보니 여러 대학교로부터 받은 감사장과 협약서 등이었다. 기자가 관심 있게 바라보니 박 대표는 “감사장은 아무에게나 주는 것이 아니에요”라며 자부심에 찬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이북 출신인 아버지와 남한 출신의 어머니를 둔 박 대표는 1957년 중국 길림성 훈춘시에서 태어났다. 중화인민민주주의공화국은 그의 국적이 됐다. 흔히 말하는 ‘조선족’이 된 것이다. 중국에서 태어나 자란 그이지만 마음 한쪽에는 항상 어머니의 고향인 한국에 대한 그리움과 설렘이 있었다.

1980년부터 5년여 동안 박 대표는 어머니의 가족을 찾기 위해 KBS 방송국에 사연을 보내는 등 다방면으로 수소문했다. 드디어 1986년 방송 사연을 들은 어머니 동생의 아들, 즉 사촌의 연락으로 어머니와 외가 식구의 극적인 만남이 이뤄졌다. 외가 식구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게 된 1989년, 박 대표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자본주의 사회를 처음 접한 제게 한국은 새로운 세계였죠. 깜짝 놀랐어요. 중국에는 공산당밖에 없는데 여기에는 여러 당이 있고…. 이 사회는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면 사유재산이 인정되는 멋있는 사회라는 것을 알았어요.”

한국의 문화에 큰 만족을 느껴 “나는 여기서 살 거야”라고 굳은 결심을 한 박 대표는 한국에 4년 정도 있다가 비자 문제와 중국에 계신 부모님 병간호 등을 이유로 돌아가게 됐다.

중국으로 돌아간 그는 그곳의 지인들에게 ‘한국문화 전도사’가 됐다. 자본주의가 좋다는 것을 알렸다. 88올림픽, 기독교·불교 등 한국에 대한 홍보도 많이 했다. 또 한 번 외갓집 초청으로 한국에 들어 와서 본격적으로 2007년부터 유학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배우에서 유학원 운영으로

사실 박 대표의 직업은 배우였다. 그는 10대 때부터 30대 초반까지 가극 배우로서 순회공연을 하며 안정적인 삶을 살았다. 주연 배우도 자주 맡았다. 매력적인 직업인 배우를 그만 두고 한국에 와서 유학원을 운영하게 된 계기에 대해 묻자 그는 “아들 한국 유학 보내려고 대학들을 알아보다가 이 좋은 시스템을 중국의 젊은이들도 알기 원하는 마음에서요”라고 답했다.

“아들아, 너도 여기 와서 느껴봐라. 네가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나라다. 교육이 미래다.”

그의 유학원 운영은 아들의 한국 유학을 계기로 중국에 있는 많은 젊은이들이 자본주의를 학습해 그 시스템을 가지고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혼자만 좋은 거 알고 있지 말고 좋은 것은 같이 공유하고 서로 윈윈(win-win)하는 길로 가자는 것이 제 철학이에요.”

하지만 그의 아들은 혼란스러웠던지 한국에 온 지 3개월 만에 다시 북경으로 가겠다고 했다. 이에 박 대표는 “여기에서는 자본주의 시너지 효과를 배울 수 있다”며 “서울대 가라는 것이 아니라 네가 자본주의를 경험해 보라는 거야. 여기서는 너나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인생수업을 하고 있어. 이를 통해 한국을 알고 인생을 알고 인간관계도 배워 사회에 나가서도 잘 적응하기 바랄 뿐이야”라고 타일렀다.

중국에서는 자식이 보배라서 아르바이트를 시키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의 충고를 들은 아들은 4년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한국 대학을 졸업했다.

◆“내 아들처럼 생각하고 인도해 준다”

박 대표는 한국에 와서 10년째 유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하는 일은 크게 세 가지다. 한국어를 모르는 중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배우게끔 한국대학교의 어학당으로 인도해 주는 것은 물론 학부생, 석·박사 과정에 입학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결정내리지 못한 중국 학생과 그들의 부모는 설명을 듣고 나면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이 많이 생긴다고 한다.

“내 아들 같이 생각하고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해요. 그 학생이 무엇을 좋아하고 그 학생의 꿈을 최대한 펼칠 수 있는 곳을 알아보고 알려줘요.”

그는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불구하고 적은 돈을 받고 일하고 있다. 심지어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는 돈을 받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돈을 보태 그 학생이 한국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그는 각 대학교의 특성을 알아보려고 전화 상담은 물론 방문도 마다하지 않는다.

“8~9년 동안 얼마나 찾아 갔는지 몰라요. 그 학교의 남대문, 동문, 기숙사까지 다 가 봐요. 대학교 근처 원룸도 다 찾아가 봐요.”

또한 그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한국 학생들을 중국 대학교의 어학원으로 인도해 주고 있으며 학부생, 석·박사 과정에 입학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그는 한국 대학교와 중국 대학교 간 업무협약을 통해 한국과 중국의 문화교류 역할에도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실례로 그는 총신대 어학당 교직원 중국 담당 주임을 맡고 있다.

“갈팡질팡하던 학생들이 졸업해서 잘된 소식이 들려오면 정말 행복해요. 앞으로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자기 이상을 실현해 나갔으면 해요. 제가 하는 일이 한중교류에 도움이 되고 젊은이들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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