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나이 어린 자녀가 자신의 몸을 할퀴고, 얼굴을 때리고, 머리를 박으며, 심지어 날카로운 도구로 손목을 긋는 등의 자해적 행동을 보일 때가 있다. 이러한 장면을 보는 부모는 그저 당황스럽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기 마련이다. 아이들은 도대체 왜 자해를 할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분노 또는 공격성의 표현이다. 자신의 화난 감정을 자해라는 수단을 통해서 상대방, 특히 엄마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화를 참지 못해서 자신의 몸을 할퀴고 뜯는 아이들이 간혹 있다. 공격성은 주로 남을 때리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이러한 공격성이 자신에게 향할 때 자해로 나타난다. 둘째, 좌절의 표현이다. 자신이 무엇인가 수행하다가 잘 되지 않는 경우, 예컨대 장난감 블록을 쌓다가 자꾸 무너지는 경우 어떤 아이는 블록을 집어 던지지만 어떤 아이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는 행동을 보인다.

셋째, 관심끌기의 이유다. 머리를 쿵쿵 박는 아이들은 엄마의 관심을 끄는 것에 성공한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것보다 문제 행동을 보임으로써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인데, 이때 자해적인 행동은 매우 효과적인 수단으로 작용한다. 넷째, 자기주장의 관철이다. 자신이 요구하는 것을 엄마가 들어주지 않는다거나 또는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자해적인 행동을 보이곤 한다. 놀란 엄마가 “알았어. 엄마가 그렇게 해 줄게”라는 말을 하는 순간 아마 아이는 속으로 미소를 지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자해 행동을 어떻게 훈육하고 고쳐줘야 할까? 먼저 부모는 당황하지 않으면서 아이의 자해 행동에 대해서 “그러한 행동은 잘못이야”라고 짧게 말해 준다. 그런 다음에 그 자리를 떠서 아이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아이의 자해 행동을 ‘무시하기’다. 만일 아이가 다칠까 염려된다면, 위험한 물건을 치우는 정도면 충분하다. 아이 스스로 자신의 몸을 가격해서 큰 상처가 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이의 자해 행동이 끝난 다음 나중에야 아이의 마음을 물어보자. 그리고 아이의 말을 들어본 다음에 부모가 수용 가능한지 여부를 판단 내린다. 그러나 가급적 들어 주는 것이 좋다. 자해를 하면서 요구할 때는 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차분하게 말할 때 들어준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함이다.

만일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자해 행동을 보인다면, 상당히 난감한 상황이기 때문에 아예 아이를 들쳐 업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 다음에 너의 행동이 잘못이어서 외출이 중단됐음을 알려준다. 아이로 하여금 자신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좋지 않은 결과가 이루어졌음을 알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는 아이의 자해 행동을 보면서 감정적으로 흥분하거나 당황하지 말라. 아이는 부모의 당황하는 반응에 재미를 느끼거나 우쭐해질 수 있다. 또한 부모가 아이의 자해 행동을 고치기 위해서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단호하게 말로 주의를 주거나 불이익을 주는 등의 비폭력적인 훈육 방법을 선택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자해가 아닌 수용 가능한 방법으로 의사 및 감정 표현을 하는 방법을 가르쳐 줌이다. 가령 언어적 표현으로 “싫어요” “화났어요”라고 말하는 법을 훈련시키거나 또는 고갯짓으로 좋고 싫음을 표현하게끔 유도한다.

자해 행동을 대신할 만한 놀이법도 있다. 예컨대 종이 찢기 놀이다. 아이에게 종이를 찢게 하라. 엄마는 못 쓰는 종이 뭉치를 들고 와서 찢는 시범을 보인다. 그런 다음에 아이로 하여금 종이를 마음껏 찢어 보게 한다. 매우 격렬하게 아무렇게나 찢을 수도 있고 일정한 방식으로 순서를 정해서 찢을 수도 있다. 그런 다음에 찢어진 종이를 허공 위로 날려 보게 한다. 엄마도 같이 참여한다. 한참을 그렇게 한 다음에 이제 같이 치우도록 한다. 파괴에서 혼란으로 그리고 나서 정돈으로 가는 과정이다. 아이는 종이를 날리면서 즐거움을 느끼게 되고 나중에 치우면서 점차 흥분된 감정이 가라앉음과 동시에 근육이 이완되는 느낌을 경험할 것이다. 공격적 에너지가 완화되는 느낌을 경험하는 것이 이 놀이에서 중요하다. 아이의 자해 행동이 잘못된 행동임을 아이에게 인식시키는 과정은 반복적으로 이루어져야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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