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백정기 의사묘역에서 81주기 추모식이 효창원7위선열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리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국가보훈처에서 꽃 하나 보내온 게 없어”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대표적인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이자 항일독립운동가인 백정기 의사의 순국 81주기를 맞아 5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백정기 의사묘역에서 추모식이 효창원7위선열기념사업회(회장 차영조) 주관으로 진행됐다.

차영조 회장을 비롯해 이종래 전 회장, 육철희 총무이사, 김용대 사무국장, 조세현 의병정신선양중앙회 부회장, 윤주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부회장, 윤용 부정부패추방시민연합회 상임대표 등 15명이 참석해 조촐하게 열렸다.

백정기 의사는 이회영․신채호 등의 영향을 받아 무정부주의 운동을 펼쳤다. 1933년 3월 17일 중국 상해 육삼정(六三亭)에서 주중 일본공사 등을 처단하기로 결정했으나 사전에 계획이 발각돼 수포로 돌아갔고, 무기징역을 받고 옥살이를 하다 1934년 6월 5일 옥중에서 향년 39세로 순국했다. 육삼정 사건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중국인들의 항일의식에 큰 영향을 주어 항일전쟁을 하게끔 유도했고, 한국인의 항일의식에도 고취시켰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되고 있다.

윤봉길 의사의 조카인 윤주 부회장은 “아나키스트의 선구자인 백정기 의사가 유언으로 조국이 해방되면 자신의 무덤에 꽃 한 송이 놔달라고 했는데, 시신이 모셔져 있는 묘소에 국가보훈처에서 꽃 하나 보내온 게 없다”며 한탄스러워했다.

윤 부회장은 “백 의사는 원래 상해의거를 계획했으나 중국의 대표적 아나키스트인 왕아초로부터 입장권(일제의 전승및 천장절식장 입장권)을 제공받지 못해 실패로 돌아갔다. 왕아초는 충분히 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공해주질 않은 탓에 백정기 의사의 의거 계획은 무산됐고 윤봉길 의사의 의거만 성공했다. 만약 동시다발적으로 의거가 진행됐으면 일제는 더 큰 타격을 입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 차영조 효창원7위선열기념사업회장이 백정기 의사 81주기 추모식을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 5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백정기 의사묘역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이종래 전 효창원7위선열기념사업회장이 참배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 5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백정기 의사묘역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윤주 윤봉길기념사업회 부회장이 참배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 백정기 의사 묘역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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