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문자입력을 위한 키패드 ‘한손누리자판’ 발명한 교포 박찬용 대표

▲ 박찬용 대표. ⓒ천지일보(뉴스천지)

최근 애플사에서 개발한 ‘아이폰’이 국내에서도 출시돼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삼성도 ‘옴니아2’를 출시했고, LG 전자도 2012년까지 마이크로 소프트 사의 윈도 모바일을 탑재할 제품을 다량 선보일 예정이다. 대부분의 스마트폰은 ‘터치스크린’을 이용한다.

터치스크린을 기반으로 하는 ‘아이폰’은 휴대폰이자 노트북이면서 동시에 오디오 플레이어, 게임기이기도 하다. 이런 복합적인 기능을 좀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데에 터치스크린이 한 몫을 했다.

국내외 터치스크린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한손누리자판’이 이목을 끌고 있다. 이 ‘한손누리자판’은 문자를 입력하기 키패드로, 크로스다이얼 테크놀로지스(Crossdial Technologies) 박찬용 대표가 개발한 것이다.

26키 자판과 12키 자판의 장단점 결합

박찬용 대표는 한글 문자 입력 키패드 분야에서 유명한 발명가다. 현재 문자를 입력하는 방식은 12키 자판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를 보완한 것이 26키 자판(쿼티자판)으로 영문알파벳을 기본형으로 배열하는 방식이다.

국내외 휴대폰에서도 흔히 접하고 있는 자판은 12키 자판과 최근 키보드 자판을 그대로 휴대폰에 적용한 26키 자판(쿼티자판)이다.  하지만 12키는 영문을 입력하기 위해서 여러 번 키패드를 눌러야 한다. 또 엄청나게 늘어난 문자 정보량을 감당하기에는 부족하다.

쿼티자판 역시 26개의 자판이 작은 휴대폰에 들어가다 보니 손가락이 큰 사람에게는 불편하다. 사용자의 편리성과 휴대형 단말기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이런 점을 해결하고자 2002년부터 잠 못자며 박 대표가 연구에 몰두했다.

“마우스로 클릭해서는 잘 몰라요. 직접 자판을 만져봐야 뭐가 불편한지 편한지 알아요.”

작은 문제점이라도 발견되면 실제로 부딪쳐 해결점을 찾아내고 꼭 검증 단계까지 거친다.  이렇게 수정 보완하는 작업을 되풀이한다. 하늘도 감동했을까. 이 같은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한손누리자판’을 개발한 것.

▲ 자료제공:박찬용 대표.
문자입력을 위한 키패드인 ‘한손누리자판’은 26키 자판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12키 자판의 장점을 보완한 것으로 기존 보다 실용성이 뛰어나다.

이 기술은 12 자판 안에 입력 빈도가 높은 자음·모음을 집중적으로 배치해 입력 효율성을 높였다. 이러다 보니 운지 거리가 가까워 입력 속도가 빨라진다.

가장 자주 쓰이는 한글 30자(이, 다, 는, 의, 에, 을 등)를 입력할 때 쿼티자판은 한손누리자판 보다 동선이 7.31배 길게 움직인다. 특히 하드웨어형식과 터치스크린 형식의 문자배열을 일치시켜 자판의 통일성을 유지한 점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영어 한손누리자판(Hanson GloPad)은 애플사의 인증을 받아 애플사 공식 인터넷 쇼핑몰인 ‘App Store’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이 한손누리자판은 애플사의 ‘아이폰’을 시작으로 스마트폰, 휴대폰, MP3플레이어, PMP, 디지털 TV, DMB 등 각종 문자 입력이 필요한 디지털기기에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다.

유일하게 펄펄 나는 한글로 휴대폰 자판 개발해 세계 문자 통일 꿈꿔

박 대표가 한손누리자판을 개발하기까지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는 평범한 건축직 공무원이었다. 하지만 42년 전 돌연 샌프란시스코로 유학길을 떠났다가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끝까지 학위를 땄다면 넥타이 매고 회사를 다녔겠지요.”

박 대표는 아내의 갑작스런 임신으로 인해 하던 공부를 그만두고 이를 악물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미국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흑인 인종차별만큼이나 동양인 박 대표도 예외는 아니었다.

“외국 살면 애국자가 되나 봐요. 고국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60년대 미국의 민권 신장 법안들이 마련된 이후 동양인에게도 기회가 주어졌지만 그는 항상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다. 그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고국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하는 마음을 함께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휴대폰의 문자배열이 너무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미국은 휴대폰 문자메시지(SMS) 사용 개념이 없다.

“미국은 한국처럼 휴대폰으로 빠른 속도로 주고받는 문자 대화는 상상도 못해요. 한글처럼 펄펄 나는 문자는 이 세상에 없지요. 세계 모든 언어학자들이 인정하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

박 대표는 한손누리자판은 ‘한글’ 덕분에 발명이 가능했다고 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글의 문자배열을 통해 아이디어가 탄생한 것이다. 한글은 문자와 문자가 결합해 또 다른 새로운 문자를 창조해낸다.

“한글의 문자배열은 참 신기하죠. 미국인은 문자를 나열할 줄만 알지 결합 할 줄은 몰라요. 하지만 한국에서 삼성이나 LG의 12키 자판에만 익숙해져 있어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는 못했을 거예요.”

박 대표의 참신한 아이디어는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나왔다. 특히 박 대표는 한글로 휴대폰 자판을 개발해 세계 문자를 통일할 수 있다면 지구촌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비전을 내놓기도 했다.

▲ 자주 쓰이는 자음과 모음을 인접 배열해 알파벳 자모 위치를 쉽게 연상해 빠르고 정확하게 문자 메시지를 작성할 수 있는 영문 한손누리자판. 영문 S와 P가 묶여 있는데 ‘Sp’로 시작하는 단어(Speak, Spring, Spy 등)가 많기 때문이다. (자료제공:박찬용 대표)
‘아이폰’에 인증된 영어 한손누리자판을 이용하면 자주 쓰이는 자음과 모음을 인접 배열해 알파벳 자모 위치를 쉽게 연상해 빠르고 정확하게 문자 메시지를 작성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영문 S와 P가 한 키 안에 들어 있다. 이는 ‘Sp’로 시작하는 단어(Speak, Spring, Spy 등)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W와 H도 같은 원리로 한 키 안에 묶여 있다.

‘White, Where, When, Why’ 등 연계되는 단어가 많다. 이렇게 섬세하게 개발해 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철저히 사용자 입장에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한손누리자판은 휴대폰 문자 입력기 분야의 제품이 출시되는 각종 전시회에서 여러 차례 우수성을 검증 받았다. 하지만 우수성은 인정받았지만 한손누리자판을 채택해 주는 업체는 아직 없다.

“직접 체험해보면 이 자판이 좋은 것을 알지만 정작 사지는 않더라구요. 아마도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과 불편하더라도 오래 쓴 것에 대한 익숙함을 아직은 뛰어넘지 못 한 거죠.”

편리한 한손 한글 입력 시스템인 자판을 발명했지만 대중화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박 대표의 과제이기도 하다.

창조적 에너지의 근원은 고국

2002년부터 한글 입력 시스템에 매달리면서 하루에 3시간 정도만 자고도 그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박 대표가 이 한손누리자판을 개발한 목적 자체에 있다.

“대한민국에 도움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동안 미국에서 동포로 살면서 설움도 받았고 모국 대한민국에서도 상처를 받았지만 그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자신이 개발한 이 발명품이 조국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것.

또 해외 이민 2세들 때문이다. 이들이 한글을 자연스럽게 습득하면 좋은데 아무래도 주된 언어가 영어를 사용하다보니까 한글을 배우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그가 개발한 문자 자판을 이용하면 이들이 한글을 보다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목적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박 대표의 힘의 근원이기도 하다. 그가 풍기는 이 에너지는 자연스럽게 느낄 수가 있다.  끊임없이 창조해 나가는 그의 모습 자체가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미래를 이끌어나갈 젊은이들이 좀 더 창조적인 삶에 도전하기를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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