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일 오전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와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주최로 ‘퀴어퍼레이드 행진 금지통고 규탄 및 퀴어문화축제의 안전한 개최 보장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사진출처: 뉴시스)
경찰, 충돌 우려 퀴어퍼레이드 금지
조직위 “갖은 수단으로 행사 망치는
일부 개신교인들의 손 들어줘” 분노

보수개신교계, 성소수자 전방위 압박
“국민정서 무시한 선정적 축제 ‘취소’”
퀴어축제 행사 둘러싼 양측 공방 가열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전국의 성소수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개최하는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거리행진)가 15년 만에 처음으로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경찰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위반을 이유로 행사 개최를 불허했기 때문이다.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와 인권단체, 법조인들도 경찰의 이번 결정을 위법으로 규정하고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일각에서는 퀴어문화축제를 줄기차게 반대한 한국개신교 보수단체들의 압력을 받은 경찰이 중립을 지키지 못한 채 편파적인 조치를 내렸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서울경찰청과 서울남대문경찰서는 퀴어문화축제 조직위가 오는 28일 퀴어퍼레이드를 하기 위해 낸 집회 신고에 대해 옥외집회 금지를 통지했다. 경찰은 집시법 제8조(집시법) 제2항과 제12조(교통 소통을 위한 제한) 제1항에 따라 ‘주요 도시 주요 도로에 해당해 심각한 교통 불편을 줄 것이 명백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와 함께 ‘행진로의 일부가 먼저 신고된 단체의 행진로 4개 장소와 경합이 되고, 동시 개최시 상반되거나 방해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지난 2일 퀴어문화축제조직위를 비롯한 인권단체들은 경찰이 법적 요건도 갖추지 않고 성소수자의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규탄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수자인권위원회는 서울지방경찰청의 퀴어문화축제 행진 금지통고를 철회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통해 “서울경찰청의 금지통고 사유는 헌법과 집시법의 요건을 충족하지않아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경찰이 보수개신교 세력 도와줘”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과 인권단체연석회의 등 108개 인권·시민사회·종교단체들은 이날 거리행진을 불허한 경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경찰이 중립을 가장한 행진 금지를 통해 성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고 혐오하는 반성소수자·보수개신교 세력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성토했다.

이어 “성소수자들이 일 년에 단 하루 거리로 나와 자긍심으로 행진하는 행사를 망치기 위해 갖은 수를 쓰는 이들의 손을 들어준 현실에 분노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며 “성소수자가 사회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를 짓밟는 행위다. 특정 세력의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혐오 및 폭력을 부추기는 행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직위는 지난 5일 29일 자정 서울지방경찰청, 남대문경찰서 등에 오는 28일 서울시청 주변 도로인 태평로, 청계로, 을지로 등의 구간에서 퀴어퍼레이드를 진행하겠다고 집회신고를 한 바 있다.

조직위에 따르면 보수 개신교세력은 처음 조직위가 예정했었던 6월 13일 대학로에서의 퀴어퍼레이드를 방해하기 위해 혜화경찰서 앞에 일주일이 넘도록 텐트를 쳐놓고 대기했으며, 서울 시내 주요 장소에 동시다발적 집회신고를 했다. 이러한 방해와 시위가 지난 5월 한 달 내내 이어졌다.

급기야 지난달 11일 한국교회연합(한교연),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한국장로교총연합회(한장총) 등 보수 개신교단체들은 남대문경찰서를 압박하기 위해 퀴어문화축제 집회신고에 반대하는 의견서까지 제출했다. 이 결과 집회신고 규정이 변경돼 조직위와 인권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21일부터 28일까지 남대문경찰서 집회신고 장소 앞에서 노숙까지 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노숙까지 했는데 불허 통보에 ‘침울’

강명진 조직위 집행위원장은 “지난 15년간 진행해온 퀴어퍼레이드는 시민들의 통행과 차량 소통에 지속적이거나 심각한 불편을 준 일 없이 평화적으로 진행돼 왔다”며 “경찰이 퍼레이드를 방해하려는 목적으로 여는 집회를 퍼레이드와 경합한다고 보는 시각은 부당한 것”이라고 답답함을 드러냈다. 또 그는 “경찰의 금지통고는 노숙을 함께해 온 시민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행위”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민변 소수자인권위는 “예정된 퀴어문화축제 행진 경로 중 대부분은 일요일에 차 없는 거리에 해당한다. 축제는 2000년부터 종로와 청계천, 신촌 등 서울시내에서 매년 평화롭게 진행됐다”며 “심각한 교통 불편을 초래한 적이 없는데, 경찰이 교통 불편을 근거로 한 금지 사유는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진철 향린교회 사회부장도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부끄럽다. (경찰은) 보수 개신교단체의 말만 듣지 말고 우리 같은 신자들도 있다는 것을 고려해 금지통고를 철회해야 한다”면서 “우리는 6월 9일과 28일에 교회 깃발을 들고 행사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직위는 퀴어퍼레이드 금지통고 취소와 안전한 퀴어문화축제 개최를 촉구하는 요구서를 서울지방경찰청 민원실에 전달했다. 또한 서울행정법원에도 옥외집회금지통고 취소 소송과 옥외집회금지통고 효력정지 신청을 제기할 계획임을 시사했다.

▲ 한기총·한교연·한장총 등 보수 개신교단체 5곳은 지난 1일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퀴어축제와 퍼레이드는 국민정서를 무시한 선정적 축제다. 서울시는 퀴어축제와 퍼레이드 장소 사용을 즉각 취소하라”고 촉구했다. (사진출처: 한기총 홈페이지)
◆보수개신교, 동성애대책위 출범 압박수위 높여

한기총, 한교연, 한장총 등 보수 개신교단체 5곳은 지난 1일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퀴어문화축제 취소를 주장하며 ‘한국교회동성애대책위원회’를 공식 출범시켰다. 이들은 “퀴어축제와 퍼레이드는 국민정서를 무시한 선정적 축제다. 서울시는 퀴어축제와 퍼레이드 장소 사용을 즉각 취소하라”고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동성애와 에이즈의 상관관계에 대해 침묵하는 질병관리본부와 동성애가 정상적인 삶의 양식이라고 가르치는 교육현장에 대해 크게 우려한다”며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를 규탄했다. 이들이 출범시킨 한국교회동성애대책위는▲동성애 및 퀴어축제 반대캠페인 ▲탈동성애 지향자를 위한 상담, 보호와 상담사 양성 ▲교과서내 동성애 조장 문구 삭제 유도 ▲질병관리협회의 2012년 이후 에이즈발생 원인과 대책, 현황 공개청구 ▲동성결혼·동거법 대체 결혼보호법제정 저지 ▲동성애 지지 의원 공개 질의 및 낙선운동 등을 추진키로 했다.

오는 9일과 28일 열리는 퀴어문화축제 행사 곳곳에서 양측의 물리적 충돌을 배제할 수 없어 논란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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