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이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언젠가 어떤 사람이 먼저 했음직한 말이다. 과거 수많은 현자들이 화두로 던졌을 것만 같다. 아파보면 느낀다. 병상에서 신음하는 환자들에겐 그 말이 진리다. 아프지 않으면 행복이다. 병마에만 시달리지 않으면 행복할 것 같다. 무릇 질병으로 인한 고통은 재난이요, 불행임은 물론이다. 여기에 뒤따르는 엄청난 경제적 부담, 정반대로 건강했다면 즐길 수 있었을 황금 같은 시간과 생활의 자유라는 기회비용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수발드는 가족에게도 미안하고 지인들에게도 밝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니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환자가 병마에서 회복하게 되면 생각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

자영업자도 마찬가지다. 경기가 계속 악화일로이다 보니 시쳇말로 ‘똔똔’이면 행복한 것이고 그저 먹고 살 정도라면 불행하지 않다고 한다. 마치 득도한 도인처럼, 성자처럼 말한다. 장사하는 사람은 손익분기점을 유지하면 행복이라고. 직원 월급이라도 줄 수 있고 그들을 편안히 먹여 살릴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감가상각비가 모자라지 않고 임대료만 펑크내지 않고 줄 수 있으면 된다고. 그러다 부자가 되면 인생관이 다시 바뀐다. 정작 돈을 벌면 달라진다. 어려울 때와 달리 큰돈을 만져도 별로 행복하지 않다. 더 많이 갖고 싶기 때문이다. 이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는 이도 있겠고,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반박하는 이도 있겠지만.

우리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그래서 ‘더, 더…’라고 요구한다. 아직은 배가 고프고, 아직은 더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족할 줄 모른다. 술 담배 마약 도박 등에 빠져 패가망신하는 사람이 그렇고, “머니 머니 해도 ‘머니’가 최고야”라거나 자나깨나 “돈, 돈…” 외치는 사람들이 그렇다. 주식투자자의 경우도 특히 절제의 미학과 자기분수를 지키기가 쉽지 않다. 주식을 사는 타이밍은 쉽지 않다. 하지만 파는 게 더 어렵다. 무릎에서 사들여 이익이 났을 때 어깨에서 파는 게 죽기보다도 더 힘들다고 한다. 필자 지인 중에 공직에서 나와 주식투자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있다. 과거 80년대에 2000만원을 신용대출 받아 시작한 주식투자로 한때 큰손이 됐었다. 그는 이른바 ‘작전’을 앞세워 전문적으로 돈을 불리고 또 불렸다. 주식은 어렵다. 부지런해야 한다. 그는 투자 때 꼭 기업을 찾아 사전탐문조사를 실시했다. 경제 전반에 관해 공부도 많이 했고 기술적 측면의 주식투자 기법도 잘 알게 됐다. 정보에도 늘 예민했다. “내가 말야, 딱 10억만 만들면 이런 돈장난 그만두고 시골가서 농사나 지으며 편안히 살려고 한다.” 그가 90년대에 필자에게 던진 말이었다. 그 후 강산이 몇 번 바뀌고 또 바뀌었다. 그 새 주식으로 번 돈이 10억원이 넘었고, 다시 100억원이 넘었다. 경기도 남양주 등에 대형 부동산을 여러 채 구입했고, 차도 몇 대를 굴렸다. 경제계에서는 한때 천억대 자금을 주무르는 큰손으로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도 했다. 주식은 오르락내리락 부침이 심했다. 그는 세 번의 성공과 세 번의 실패를 거쳐 아직도 주식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있다. 큰 수술도 했다. 여전히 건강이 좋지 않은지 과거 함께했던 지인들과의 모임에도 나오지 않는다. 자금 빌려준 이가 걱정돼 알아보니 지금은 월세로 근근히 살아가며 지하 단칸방을 전전하고 있다고 한다.

TV드라마가 사람들의 올바른 가치 판단을 뒤흔든다는 비판이 있다. 상업성을 위해 자극적이고 비정상적인 내용으로 만든 드라마가 우리 사회와 교육에 미치는 폐해는 크다. 지나친 선정성과 황폐한 물신주의로 치닫는 막장드라마부터 없애야 한다는 지적이다. TV의 영향력은 어마무시하다. 필자는 거의 맹목적으로 이에 공감한다. 지상파, 우선 KBS부터 진정한 공영언론으로 100% 거듭나게 제도화해야 한다. 지금 시청률과 광고주를 의식하지 않는 드라마가 있는가. 욕하면서도 빠져들게 만드는 막장드라마에는 행복에 기준이 없다. 만족을 모르는 경쟁뿐이다. 먹어도 먹어도 계속 배가 고프다. 나보다 더 행복하고 나보다 더 배부른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경쟁심과 상대적 박탈감만을 던져준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 인기로 보나 남부러울 것 없는 프로스포츠 감독이나 선수들이 승부조작 사건에 휘말리는 것은 무엇인가. 가질 만큼 가진 기업가가, 누릴 만큼 누리고 있는 정치인이, 명예로울 만큼 명예로운 공직자가 끝없는 탐욕에 자신의 몸을 맡겨버리는 것은 무엇인가. 최근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에서 아들 노건호씨가 한 돌출발언은 무엇인가. 노 전 대통령은 자신과 같은 불행한 정치인이 다시 또 나오지 않기를 바라지 않았는가. 오죽하면 눈물까지 흘리며 측근들에게 ‘정치를 하지 마라’고 당부했을까. 건호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고 박정희 대통령의 명예를 상당부분 회복하고 작금 대통령까지 이른 상황을 목도하면서 ‘아직 배가 고프다’고 느낀 것일까. 과연 박 대통령은 한 개인으로서도 지금 행복하기만한 것일까. 우리는 불행해지기 전에는 진정한 행복을 알기 힘든 것일까. 분수를 모르고 도를 넘은 행동을 하지 말라는 당부는 노 전 대통령 유언에도 있는데. 당신은 불행한가?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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