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위원 시인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었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족하도다.’

한 번쯤은 들어본 것 같은 이 내용은 많은 사람들이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즐거움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렇긴 해도 필자가 이 글을 읽고 떠올린 것은 스스로 만족한다는 ‘자족(自足)’이다. 그것이 안빈낙도로 이어졌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서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자족한다는 것이 얼마나 자신에게 큰 위안이 되는지를 새삼 느껴본다.

널리 알려진 ‘나물 먹고 물마시고…’ 이 문장은 여러 곳에 나온다. 채근담의 자연편에서 나오고, 조선시대 십이가사의 하나인 백구가(白鷗歌)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심지어 안동 장씨 가문의 노래에서도 그 구절이 있다. 또 고시조 가운데 ‘반소식음수(飯疏食飮水)’니 ‘곡굉이침지(曲肱而枕之)’라는 문장 표현이 많은데, 그 원천은 아무래도 공자의 논어 편이 아닌가 생각한다. 술이(述而)편을 보면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飯疏食飮水) 팔을 굽혀 베더라도(曲肱而枕之) 즐거움이 그 안에 있으니(樂亦在其中矣), 의롭지 못하고서 부귀는(不義而富且貴) 나에게 있어 뜬구름과 같으니라(於我如浮雲)’는 문장에서 그 전말을 알 수가 있다.

이 문장의 핵심은 ‘거친 음식’을 먹고도 즐거움을 찾는 게 아니라 인간이 가져야 할 덕목으로서 의(義)의 실천에 있다. ‘의롭지 못한 부귀는 뜬 구름 같다’는 공자 말씀은 즉, 의는 사람으로서 지키고 행하여야 할 바른 도리이니 각자 사회생활에서 지분(知分)을 알아 자족하고, 의롭게 생각하며 행동하라는 교훈인데, 이는 동서고금을 통해 어디라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통용될 보편적인 이치일 것이다.

성인이라 일컫는 공자도 벼슬길의 출세를 원했다. 스스로 식견을 갖추느라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국민 구제와 국가경영의 치세 능력이 있었지만 노(魯)나라에서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자신을 알아주는 군주가 있다면 선각심의 경험을 부국강병에 보태기 위해 그의 나이 56세 때부터 12년 동안 인근 제후국을 돌아다니며 벼슬길을 구하였지만 끝내 이루지 못하고서 노나라로 돌아와 학문에 힘쓰고 시(詩), 서(書), 예(禮)를 정리하게 된다. 그처럼 공자는 의로움을 갖췄지만 부귀는 찾아오지 않았고, 치세를 준비했지만 출세 가도는 그에게 열리지 않았다.

공자 스토리를 접하면서 출세는 필연이라기보다 우연이고, 벼슬은 운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던 차, 잠시 쉴 겸해서 읽던 책을 덮어두고 뉴스를 봤다. 뉴스 초점은 국무총리로 내정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됐고, 그 내용들로 도배하고 있었다. 그동안 새 총리 물망에 여러 인사들이 올라져 설왕설래했지만 박 대통령은 장고 끝에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후보자로 최종 낙점한 것인데, 경제살리기가 박근혜 정부의 시급한 국정과제임에도 불가피한 선택에 이른 셈이다.

정치권과 정부에 난제가 쌓여있으니 현 정국은 어렵다. ‘성완종 리스트’에서 기인된 이완구 전 총리나 홍준표 경남지사에 대한 사법처리 문제, 또 나머지 명단에 있는 6명에 대한 국민여론과 야당의 압박이 없는 등 평상의 정국이라면 새 총리에 대한 선정 접근 방식이 달랐을 것이다. 아마도 경제살리기나 국민화합을 추진하기 위해 그 방면에 전문인사를 지명했을 테지만, 사정이 법무장관을 총리 후보자로 지명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였으니 어쨌든 황 후보자 개인에게는 ‘국정 2인자’로서 출세길이 열린 셈이다.

황교안 총리 후보자는 관운이 좋은 편이다. 1981년 사법고시에 합격해 83년 청주지청 검사를 시작으로 2011년 부산고검장 등 28년간 승승장구했고, 현직에 물러나서는 변호사 활동 중에 박근혜 정부의 정홍원 초대 총리에 의해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이 됐다. 발탁 배경은 정 총리의 검찰 후배이자 학맥인 성균관대 법대 후배로 알려졌지만,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통진당 해산 과정과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사건 등 직무 수행에서 박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데, 정치적 편견 없이 진중하게 일을 잘 처리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행적의 총리 내정자를 두고서 야당에서는 회전문 인사니 국민을 분열시키는 인사라느니 비판하면서 종전에 장관 인사청문회는 통과했지만 총리 청문회는 격이 다르다며 철저한 검증을 벼르고 있다. 하지만 황 후보자는 총리 내정 일성으로서 ‘비정상의 정상화’ 등을 들고 나왔다. 그가 과거 행적과 일처리에서 과연 비정상은 없었는지, 공자 말씀따나 사욕을 채우지 않고 의(義)롭게 한 것인지, 또 일국의 재상감으로 그만한 능력을 충분히 갖추었는지는 본인 스스로는 잘 알 것이다. 황 후보자가 그렇지 못함에도 행여 ‘국정 2인자’ 자리에 올라 부귀를 꿰찬다고 할 양이면, 그에게 있어 부귀는 뜬구름과 같음을 역사와 민심은 알려줄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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