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한양도성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과 한양도성의 모습. 왼쪽부터 성벽, 수성동 계곡, 숙정문, 낙산구간. (천지일보(뉴스천지)DB)
조선왕조 600년의 역사 담긴 ‘서울 한양도성’
명성황후 능이 있던 자리 ‘홍릉수목원’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따뜻함을 머금은 바람이 살랑거리며 코끝을 스치는 계절.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게 만드는 계절의 여왕 5월이다. 햇살에 반짝이는 푸른 나뭇잎과 따스한 온기를 품고 있는 대지를 느낄 때면 심장은 설렘으로 더욱 두근거린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난 휴식이 주는 평온함. 다가오는 주말엔 도심과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역사를 찾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조선시대 한양으로 불리던 서울은 조선 왕조와 그 역사를 함께한 만큼 도성(都城)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조선 최대의 프로젝트 ‘서울 한양도성’이다.

사적 제10호로 지정된 서울 한양도성(총 면적 467,922㎡, 약 18.2㎞)은 조선 건국 초기 태조가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기 위해 궁궐과 종묘를 먼저 지은 후, 태조 4년(1395) 도성축조도감을 설치하고 한양을 방위하기 위해 쌓은 성곽이다.

바로 이 성곽에 4대문과 4소문을 두었으니 2008년 2월 10일 방화로 소실돼 전 국민을 충격과 슬픔에 빠지게 했던 국보 제1호 숭례문이 4대문 중 하나다. 숭례문은 2013년 5월 4일 복원됐으나 국보 1호 교체론이 거론되는 등 아직도 아픔을 간직한 채 서울 한복판을 내려다보고 있다. 4대문은 동의 흥인지문, 서의 돈의문, 남의 숭례문, 북의 숙정문을 지칭하며, 4소문은 동북의 홍화문, 동남의 광희문, 서북의 창의문, 서남의 소덕문을 말한다.

한양도성은 세종 4년(1422) 도성 수축공 사 때 토성 부분을 석성으로 개축했으며, 문종 1년(1451)에도 성벽 수리가 시행됐으나 임진왜란 때 참변을 당한 후 광해군 8년(1616) 일부가 수리됐다. 이후에도 숙종 30년(1704), 영조 19년(1743)에 부분적으로 보수됐으며, 고종 6년(1869) 동대문 개축을 끝으로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1968년 무장공비가 청와대를 습격한 1.21사태 이후 군사지역으로만 사용되다가 2006년 4월 홍련사~숙정문~촛대바위의 1.1㎞ 구간이 일반에 개방된 것을 시작으로 2007년 4월 와룡공원~숙정문~청운대~백악마루~창의문의 4.3㎞ 구간이 개방됐다.

개방시간은 하절기인 4월에서 10월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이며, 동절기인 11월에서 3월까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입장할 수 있으며 퇴장시간은 오후 5시이다. 탐방 시간은 약 2시간 정도소요 되며, 입장료는 없으나 군사보호지역이므로 신분증을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자! 서울 한양도성을 돌아봤다면 이제 발걸음을 옮겨 동대문구 청량리에 위치한 홍릉수목원으로 가보자. 홍릉수목원은 을미년 일본인 자객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한 명성황후의 능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국내 최초의 수목원으로 지금은 국립산림과학원으로 불린다.

명성황후의 묘는 1919년 1월 21일 고종황제가 승하한 뒤 그해 3월 4일 남양주로 이장됐다. 남양주시에 있는 홍릉(洪陵)은 바로 고종황제와 명성황후를 합장한 묘다.

한 나라의 국모(國母)가 무참히 살해당한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도 만들지만 홍릉숲은 1922년 국립산림과학원이 설립되면서 잘 가꾸어져 학술적 연구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은 곳이기도 하다. 이에 홍릉숲을 환경적으로 보전 관리하기 위해 1993년부터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제한적으로 개방하고 있어, 평일 개방을 두고 여러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국내외 다양한 식물유전자원 총 2035종(목본 1224종, 초본 811종)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이곳은 도심 속에서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목원으로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휴식이 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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