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8000만이 행복한 통일한국의 미래상’이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리 가운데, 2세션에서 박종화 경동교회 담임목사의 사회로 종교계 인사들이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전문가·종교계, 5·24 해제와 민간단체 활동 필요성에 한목소리
“남북 서로 신뢰 못하는 현실 해결하고 북한 주민 마음 사야”
“통일 후 경제 효과 기대할 만… 세계 주요 국가로 부상 가능”

[천지일보=김지연 기자] “신뢰가 키(key)다. 그런데 남북은 양쪽 모두 이것이 없다” “5·24조치를 제발 해제하자” “학술·문화·예술 등 교류를 늘려야 한다. 만나고 부딪치면 한결 가까워진다” “1차적으로 개성공단 같은 경제공동체가 통일의 기반이다” “민간지원의 길은 정치와 상관없이 열어놔야 한다”

이구동성으로 참석자들의 주문이 쏟아졌다. 사회·종교계를 이끌고 있는 관록 있는 실무자들이 모여 남북통일을 생각하는 자리에서다.

“북한의 상황은 예전과 다릅니다. 요즘은 쌀이나 밀가루 같은 인도주의적 지원도 싫다고 해요.” 발제자인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 고문이 말했다. 최근 3년간 북한의 쌀값과 환율이 상당히 안정돼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남과 북은 서로의 상황에 대한 정확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다. 분단 70주년이기도 하다. 남쪽에는 5000만명이 넘는 인구가 살고, 북쪽에는 그 절반 정도 되는 사람들이 산다. 둘을 합쳐 8000만명이다. 앞으로 이들이 어떻게 통일을 이루고 행복해질 수 있는지 논의하는 자리가 19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마련됐다.

통일 기반 닦는 데 ‘경제협력체’ 필수

이날 사회를 맡은 남궁영 한국외국어대 정치행정언론대학원장은 “그동안 따로따로 접근했던 북한의 인권문제, 핵문제 등을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해결책이 나온다”며 “이는 곧 통일이 필요하다는 뜻”이라고 했다.

발제자인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 고문은 “우리가 그동안 거의 흡수통일을 그려왔기 때문에 통일의 미래상을 새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통일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이익에 대한 연구도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경제적으로 한국이 발전 한계에 부딪친 상황은 북한과의 경제통합 시너지로 극복이 가능하다고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전문가든 일반인이든 통일을 한다면 양국의 체제 차이로부터 오는 혼란과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고 예상한다. 하지만 체제통합을 꾀하기 전에 경제공동체를 잘 운영해 협조 체제를 만들어간다면 부작용은 훨씬 줄어든다고 이날 패널들은 입을 모았다.

예를 들어 개성공단이나 EU공동체 같은 모양이다. 그리고 통일을 이룬 코리아는 인구와 소득 측면에서 세계적으로 상당한 입지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김 고문은 “통일의 첫 단계로 북한과의 경제협력체를 제대로 만들어낸다면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홍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먼저는 평화로운 경제공동체가 필요하다고 본다”며 “더 이상 이념이나 가치만으로 통일을 추진하기 어렵다. 국민의 삶과 직결된 문제로서 통일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종교계에서는 노정선 목사(NCCK 화해통일위원회 부위원장)가 경제적 협력의 우선성을 강조했다. 그는 ‘예방경제’라는 단어를 쓰면서 “이를 통해 80% 정도 달성하고 나머지를 정치적으로 진행하는 게 좋다고 본다”는 생각을 밝혔다.

남·북 ‘서로 無신뢰’… 북한주민 마음 중요

김병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는 현재 상황의 가장 심각한 문제를 ‘남북 간 신뢰 상실’이라고 꼽았다. 이것이 양국의 국민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신뢰 프로세스를 강조한 것은 올바른 접근이지만, 현실적으로 풀어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통일 한국에 대한 밝은 비전을 제시하되, 고통스러운 분단 상황과 막대한 분단 비용 등에 대해 현실적인 성찰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소통과 동질성 확대, 녹색(생명) 가치 확산 등을 제안했다.

박종철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박 대통령 얘기처럼 통일이 경제적으로 ‘대박’일 수 있지만 정치사회적 틀이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박 연구위원은 “독일 통일을 보더라도 특히 합의가 중요한데, 우리가 서독으로의 흡수통일이라고 보지만 사실은 선택과 합의의 과정이 있었음을 눈여겨봐야 하며 또 주변국의 국제적인 협력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홍순경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은 “내가 북한 출신으로서, 북한 주민들은 갑작스러운 완전통일보다는 첫 단계로 개혁개방을 원한다. 그리고 아직 남한 정부를 신뢰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북한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통일은 지연되거나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이 부분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강조다.

탁아소 지원, 대학생 교류를 비롯해 탈북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홍 위원장은 조언했다. “북송되는 사람이 많아 반신반의한다. 주도면밀한 작전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를 신뢰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탈북민을 난민으로 인정받도록 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 19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8000만이 행복한 통일한국의 미래상’이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리 가운데, 1세션에서 남궁영 한국외대 정치행정언론대학원장 사회로 발표가 진행 중이다. ⓒ천지일보(뉴스천지)

5·24 해제하라… 민간단체 활동 넓혀야

박홍근 의원은 5·24 조치에 대해 “정말 걱정된다”면서 “정부가 스스로 풀기 어렵다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와 종교계에서 나서 정부에 촉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순경 위원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서로 신뢰를 완전히 잃을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그는 “정부가 추진하는 데 한계가 있는 부분을 민간단체가 추진해야 한다”며 국민적인 공감대에 정부와 민간단체들이 함께하면 우리 시대에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조계종 진효 스님은 “오늘 당장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구상한 3단계 중 첫 단계에 있으면서도 우리는 가장 중요한 ‘신뢰’를 쌓지 못하고 서로의 언어 속에서 진정성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첫 단계인 화해협력도 못하면서 어떻게 통합단계로 넘어가냐는 지적이다.

그는 “신뢰는 말로 하는 게 아니다”며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고 5·24 조치를 해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정부 기조가 바뀔 때마다 노선 자체를 근본적으로 계속 바꾸기 때문에 민간단체가 이를 도저히 맞출 수 없고 역할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박종화 경동교회 담임목사는 “독일은 정부 이전에 민간차원에서 계속 교류하며 움직였기 때문에 통일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인간 중심으로, 올해를 ‘평화 원년’ 만들자

이은형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는 “분단 70주년을 평화의 원년으로 삼기 바란다”며 “평화에 대한 인식을 사회에 널리 확산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통일보다 어려운 게 ‘남남갈등’이라면서 다른 것을 틀렸다고 매도하지 말고 마음의 증오심을 내려놓자고도 제언했다.

정인호 원불교 한민족한삶운동본부장은 “원불교는 한반도 미래를 아주 밝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원불교에는 금강산에 관한 유명한 법문이 있기 때문인데, 소태산 대종사의 법문으로 “금강이 세계에 드러나는 날 조선은 새로운 조선이 된다”는 내용이다.

노정선 목사는 통일을 하지 못함으로써 탈북 여성들이 인신매매를 겪는 등 ‘인간 노예화’의 비극이 일어나는 현상을 지적했다. 그는 남북이 서로 보듬는 게 중요하다고 짚었다.

이은형 총무는 “사람들의 마음이 자꾸 갈라지는 일을 줄이려면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일관성 있는 시스템이 정착돼야만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는 ‘8000만이 행복한 통일한국의 미래상’이라는 주제로 열렸으며 국민대통합위원회, 대한불교조계종,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회의 등이 공동주최하고, 민주평화통일자문회 종교민족화합분과위원회가 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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