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제갈량은 출사하기 전 자신을, 제환공을 춘추시대 초대 패주로 만든 관중(管仲)과 전국시대의 명장 악의(樂毅)에 비유했다. 관중이 문(文)이라면 악의는 무(武)이다. 관중은 죽을 때까지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악의는 뛰어난 능력과 높은 공을 세웠음에도 불운하게 각국을 전전했다. 대부분의 뛰어난 무장은 공을 세울수록 견제를 받는다. 군주에게 문신은 그리 두렵지 않지만, 무장은 언제 무기를 거꾸로 들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움의 대상이다.

악의는 중산국 출신으로 나라가 조(趙)의 무령왕에게 망하자 저절로 조의 백성이 됐다. 무령왕이 아들에게 포위돼 사구(砂丘)에서 굶어죽은 후, 조를 떠나 위(魏)로 갔다. 연(燕)의 소왕은 비겁하게 국상을 노려 침공했던 제(齊)에 복수를 하려고 인재를 모았다. 사신으로 연을 방문했던 악의를 본 소왕은 첫눈에 반했다. 당시 중국 대륙에서는 서쪽의 진(秦)과 동쪽의 제가 양강체제를 굳히고 있었다. 악의는 조, 초, 한, 위와 5국연합군을 구성해 제를 공격했다. 지금의 산둥성 제남의 서북쪽에서 제군을 격파한 악의는 도성인 임치까지 추격했다. 제왕은 거(莒)로 도망쳤다. 임치를 함락한 악의는 보물과 종묘사직의 기물을 모두 연으로 보냈다. 악의는 5년 동안 제에 주둔하면서 70여개의 성을 함락했다. 제는 거와 즉묵(卽墨)만 남았다. 악의는 무력만으로는 제를 멸망시키지 못한다고 판단해 인심을 얻기 위해 포위만 하고 성을 점령하려고 하지 않았다.

문제는 연에서 소왕이 죽고 혜왕이 즉위하면서 발생했다. 혜왕은 태자 시절부터 악의를 좋지 않게 생각했다. 즉묵을 지키던 제의 전단(田單)은 그 틈을 노려 반간계를 펼쳤다. 전단에게 넘어간 혜왕은 악의가 일부러 남은 제의 두 성을 공격하지 않는 것은 다른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라고 오해하여 그를 소환하고 기겁(騎劫)으로 교체했다. 악의는 조국 조로 돌아갔다. 전단이 교묘한 심리전과 화우진(火牛陣) 연군을 대파하고 실지를 모두 회복했다. 비로소 잘못을 인정한 혜왕은 악의에게 사람을 파견해 돌아오라고 설득했다. 이때 악의가 비통한 마음으로 혜왕에게 보낸 편지가 유명한 ‘보연혜왕서’이다. 이 글은 자신을 믿고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준 소왕에 대한 절절한 마음과 비록 오해로 자신을 버렸지만 자신이 충성을 다한 소왕의 아들 혜왕에 대한 진실한 마음을 담은 명문으로 군신지간의 관계에 대한 귀감이 될 만하다. 그는 소왕의 업적을 밝히고 명예를 지키기 위해 죽지 못했다고 토로하면서 군자는 절교하고도 비난하지 않고, 충신은 나라를 떠나도 누명을 벗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감동한 혜왕은 악의의 아들 악간(樂間)을 창국군으로 봉했다. 악의는 연과 조를 왕래하며 양국의 객경이 되었다. 악의는 조에서 죽었다.

사마천에 따르면 제나라 출신으로 한신에게 자립을 권했던 괴통(蒯通)과 한무제에게 추은령(推恩令)을 건의해 국정을 안정시킨 주보언(主父偃)이 이 글을 읽을 때마다 울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악의는 황로학의 선구자였다. 그의 병법과 정치에 대한 식견은 ‘무위(無爲)’를 바탕으로 삼은 유연함이 요체였다. 악의를 가장 철저히 신봉했던 사람이 한나라 초기의 명재상 조참(曹參)이다. 요절한 천재 가의(賈誼)는 악의야말로 황로학의 정수에 통달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소동파는 악의가 전국시대의 영웅이었으나 대도는 몰랐다고 악평했다. 그는 소왕이 살아 있어서 반간계에 넘어가지 않았더라도 악의는 결국 실패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악의의 완병책(緩兵策)은 제가 다른 나라와 연합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었기 때문에 역공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의 현종은 역대명장의 무묘(武廟)를 설치하고 주왕조의 개국승상이자 군사인 여상(呂尙)을 위주로 제사를 올렸다. 한의 유후(留侯) 장량(張良)과 악의를 포함한 역대 명장 10명을 더했다. 당의 숙종은 역대로 무공이 탁월했던 명장 10명을 무성왕묘에 배향하고 ‘무묘십철(武廟十哲)’이라 불렀다. 악의와 동시대 인물로는 오기와 백기(白起)뿐이었다. 악의는 제를 정벌할 때 악릉(樂陵)의 대추가 유난히 달고 맛있어서 1천여 그루를 연으로 옮겨 심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무성하게 자라 악의수(樂毅樹)라 불렀다고 한다. 보연왕서는 무장이 남긴 희귀한 명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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