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세계종교지도자들을 초청해 연석회의를 가진 바 있다. 유엔이 창설된 지 70년이 됐지만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금 지구촌에 만연한 테러와 전쟁은 공포의 대상에서 점차 당연한 문화로 자리 잡혀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더 이상 테러와 전쟁을 방치해선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뿐만 아니라 외교와 정치적 수단으로는 테러와 전쟁을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갖기 시작했으며, 나아가 테러와 전쟁의 뒤에는 종교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된다.

여기서 잠시 문제의 근본을 이해하기 위해선 몇 가지 고찰해 볼 점이 있을 것 같다. 요즘 어디를 가든 인문학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인문학이란 인간의 근본문제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러한 인문학의 범주에는 언어 문학 철학 역사 종교 등의 학문이 해당된다. 철학자 플라톤은 인문학을 “인간과 인간의 근본을 연구하는 학문이며, 나아가 인간의 사상과 문화를 탐구하는 학문”이라 정의했다. 대한민국의 대표기업이라 할 수 있는 삼성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채용하는 기업으로 정평이 나 있으며, 현대 역시 역사 인식을 갖춘 인재를 채용하는 기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말하는 것이지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만을 채용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사회와 국가 나아가 인류가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문명의 발전을 거듭해 왔으며, 문명의 발전은 이공계 즉, 기능과 기술의 발전 없이는 불가능하며, 이는 지금까지의 역사가 잘 증명해 주는 바다. 다만 이공계 전공자들에 의한 문명의 발달은 성장과 발달 그 자체가 돼서는 안 되며, 인간과 인간의 근본을 유지한 인간 중심 내지는 인간의 삶의 가치를 구현시키는 성장이라야 한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성장만을 위해 달려온 나라다. 식민지와 전쟁이라는 비극과 참화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불리게 했고, 오직 살아야 했기에 성장일변도의 정책은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그 결과 반세기를 지나면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기적의 나라로 급부상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성장의 순기능 뒤에는 역기능 또한 무섭게 도사리고 있었으니 오늘의 현실이다. OECD 34개국 중 자살률 1위(하루 평균 자살자 42.6명), 국민행복지수 하위, 부패인식지수 27위라는 불명예를 가슴에 붙여야만 했다. 오늘날 인문학적 소양을 갖춰야 한다는 분위기가 대세인 이유가 된 것이다.

생각해 볼 것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게 되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기형적이고 편협된 가치관에서 벗어나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의 보편적 가치는 뭔가. 바로 평화 자비 생명존중 평등 자유 등 누구에게나 통하는 소중한 가치들이다. 이 대목에서 인간의 보편적 가치는 또 뭔가라고 했을 때, 다름 아닌 종교가 추구하는 종교의 목적이요 이념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즉 ‘인문학은 종교다’라는 말과도 다르지 않으며, 인문학적 소양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은 종교성 즉, 영성의 타락이 낳은 결과라는 사실도 함께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이같이 종교성의 타락이 극에 달했을 때를 일컬어 말세(末世)라 했으니, 이는 종교말세를 의미하는 것이다. 종교는 착하고 선하게 살라는 세상의 도리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이러한 왜곡된 종교의 본질은 오늘날 기복신앙(祈福信仰)을 낳았고, 신의 가르침은 완전히 사라지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종교(宗敎)는 그 뜻에서 알 수 있듯이 하늘의 것을 보고 그 본 것을 가르치는 신의 가르침이요 으뜸의 가르침이다. 이 종교는 우리 인간 아니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게 하며, 생로병사가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알게 하는 가르침이다. 석가도 바로 이 가르침을 깨닫기 위해 부귀영화를 버렸고, 성서도 창세기를 통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죽고,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산다는 내용으로 시작되는 것으로 보아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를 다루는 인문학이 바로 종교라는 사실부터 깨달아야 하니, 인간에게 있어 이보다 더 중하고 가치 있는 학문은 없을 것이다. 이같이 영성의 타락으로부터 시작된 종교의 말세는 오늘날 수많은 종교가 출현하게 된 원인이 됐고, 이 지구촌을 분란의 도가니로 변질시켜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말세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종교를 갈구하게 하니 새시대를 이끌어갈 새종교의 출현은 당연하다. 이것이 바로 송구영신(送舊迎新)이며 호시절(好時節)이며, 나아가 만물이 학수고대해 온 것이니 ‘만물고대 신천운(萬物苦待 新天運)’이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비귀환이 된 현실은 종교의 타락이 빚은 결과요, 이처럼 타락한 시대를 회복하기 위해선 반드시 종교가 하나 된 새종교를 맞이해야 하니 종교와 종교지도자들의 몫이 그 어느 때보다 중한 것이다. ‘종교가 살아야 사회와 나라와 인류가 산다’는 말이 이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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