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위원 시인

 
세상일들이 복잡하지만 단순할 때도 있다. 도저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난제가 뜻하지 않게 잘 해결되는가 하면, 쉽게 풀릴 일도 잘못된 훈수나 복병을 만나면 꼬이기 마련인데,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개인사보다 더 우여곡절을 겪는다. 공무원연금 개혁처럼 여야 원내대표단의 사전 실무 협의와 여야 대표가 만나 합의서에 도장 찍었으니만큼 4월 임시국회에서는 통과될 줄 알았다. 하지만 여야 협상 대표들의 확언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등 이곳저곳에서 불거져 나온 불만으로 인해 여권이 눈치 보느라 공무원연금 개혁은 물 건너가고 말았다.

향후 70년간 333조원에 달하는 재정을 절감하기로 여야가 합의해 쉽게 처리될 줄 알았는데 복병을 만난 것이다. 그 복병은 개혁의 본질인 공무원연금과 관련된 내용이 아니라 이와는 별도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상향 조정이라는 여야 합의 내용이 빌미가 됐다. 50% 상향 합의안에 대해 청와대가 이견을 달았고, 추가 부담을 필수로 하는 국민연금 대체율 인상에 반대하는 국민여론이 드세 어렵사리 마련된, 그것도 당초 정부가 개혁하려는 내용에서 크게 벗어난 공무원연금 개혁이 해결되지 못한 채 5월 임시국회에서 뜨거운 감자가 될 모양새다.

여야 원내대표단에서는 공히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해 ‘첫술에 배부른 것은 없다’고 전제하면서 다만 사회적합의기구를 처음 마련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차선책 합의에 만족한다고 말한 바 있다. 상호 입장이나 주장이 다른 여야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현안을 조정해나가야 하는 정치기술이 그만큼 어렵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증명시킨 것인데 그들의 고충은 뒤로하고 결과물에 대해 아웃사이더에서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았던 게 이번 파동의 단초로 여겨진다.

사실 따지고 보면, 공무원연금 개혁안 내용 중에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 문제와는 별도로 순수 공무원연금 개혁만 봤을 때 정부도 그렇지만 국민 37%는 미흡하다는 여론이다. 물론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라고는 하나, 공무원 기여금 7%에서 9% 인상은 향후 5년 동안 이루어지고, 현재 1.9%인 연금 지급률을 1.7%로 하향 조정은 20년에 걸쳐 서서히 완성되는 내용이니 공무원 길을 걸을 새내기들만 불리할 뿐 기존 공무원들에게는 다행이라는 소리가 들린다.

세부적 내용은 5월 임시국회에서 법통과가 돼 봐야 알겠지만 합의내용과 협상과정에서 드러난 내용을 살펴봐도 문제가 있다. 이왕에 공직자나 퇴직자가 연금 적자에 따라 국가재정의 압박 등을 고려해서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공무원연금 개혁 방향에 협조하는 것이라면 몇 가지 사항은 개선돼야 맞다. 필자가 지적컨대, 첫째는 위에서 언급했듯 공무원 기여금 9% 인상과 연금지급률 1.7% 인하에서 그 시기가 최소 5년에서 20년간 장기간이라는 점이다. 이 같은 장기간 소요는 연금 개혁의 가시적 효과를 당장에 거둘 수 없는 거북이 개혁이라는 것이다.

둘째 문제는 향후 70년간 총 재정부담 절감액의 20%를 국민연금에 보전해주는 점이다. 공무원연금액이 해를 거듭할수록 적자 구조를 보이면서 그 절감액만큼 정부의 보전지원금을 줄여야 할 처지인데, 이 재원을 국민연금과 연계해 출산·육아, 비정규직 등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에 사용해야 한다고 못박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공무원연금 부담에 따른 정부 지원액 절감은 정부가 별도 예산을 편성해 알아서 해야 할 일인데, 여야가 그 절감액 사용 용도를 지정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 이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가 나서서 불만을 터트리는 것도 같은 궤이다.

셋째는 여야 합의안에서 공무원연금을 향후 5년간 인상하지 않는 것으로 돼있다. 이렇게 될 경우 동급 비교에서 퇴직자보다는 현 공무원이 유리한 구조다. 예를 들어 2014년도와 올해 연금수급자의 연금 인상률은 전년도 물가인상률에 따라 1.3% 인상됐다. 반면에 공무원보수 인상률은 정부에서 별도로 정하는 바, 2014년도 1.7%에 이어 올해는 3.8%다. 그렇게 될 경우 연금수급자는 5년간 연금액이 동결되지만 현직자는 매년 3% 내외로 인상될 경우 최소한 5년 동안만 쳐도 그 차이가 무려 15% 정도가 되고, 그 인상된 보수에 의해 향후 연금액이 산정될 것이므로 기연금수급자와 형평성에서도 상당한 문제가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의 근본 취지는 적자구조를 개선해 정부재정의 건전성을 도모하고 미래 세대의 부담 감소에 있다. 그 와중에서 간과(看過)할 수 없는 건 공무원연금은 직업공무원에 대한 인사정책상 이루어지는 후불적 보수로서 대가임을 인정해야 하는 점이다. 그렇다면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을 동일 선상에 두고 금액만 비교하는 우(愚)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애써 여야가 마련한 연금 개혁 합의가 ‘반쪽짜리’라고 평가받는 현실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이 사회적대타협을 이루는 윈윈게임이 되게끔 5월 임시국회에서 더욱 깔끔하게 손질함이 어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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