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량하기만 한 로벤 아일랜드 교도소. 저 멀리 케이프 타운의 명물 테이블 마운틴이 보인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차례>
(1) 케이프 타운 둘러보기
(2) 아파르트헤이트, 로벤 아일랜드, 그리고 축구
(3) 희망봉을 찾아서
(4) 케이프 타운에서 포트 엘리자베스까지 - 가든 루트
(5) 동서양과 아프리카의 만남, 더반

유색인종·정치범 수용소 악명… 지금은 세계문화유산 관광지 탈바꿈

남아공의 이미지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프리카답지 않은 아프리카’라는 점이다. 이집트 등 일부 북부 아프리카를 제외하고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발전한 나라가 바로 남아공이다.

특히 케이프 타운을 가면 여기가 아프리카인지, 유럽인지 혼동이 올 정도다. 그나마 유럽에서 온 백인들보다 흑인들이 더 많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난생 처음 들어보는 말(나중에 알고보니 줄루어라고 한다)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점이 여기가 아프리카임을 짐작하게 한다.

▲ 로벤 아일랜드 교도소로 들어가는 입구. ⓒ천지일보(뉴스천지)

그러나 남아공이 ‘아프리카답지 않은 아프리카’ 또는 ‘유럽 같은 아프리카 국가’가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백인들이 세운 나라라는 점이다.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철폐된 지금,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 이후 정치적인 권력은 흑인들이 쥐고 있지만 이곳이 백인들의 나라였고 지금도 많은 부분에서 백인들이 나라를 이끌어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케이프 타운에서 아파르트헤이트의 흔적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다보면 전회에서 말했던 ‘디스트릭트 식스’를 볼 수 있다. 1970년대 백인전용지역으로 지정하면서 유색인종을 모두 쫓아버렸고 당시 가옥들이 모두 강제 철거되는 등 인종차별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또 하나가 지금부터 소개할 로벤 아일랜드다. 로벤은 네덜란드어로 물개를 뜻하는 말. 그만큼 물개가 많은 섬이라는 의미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지만 어두운 역사가 있다.  

▲ 워터프론트에서 로벤 아일랜드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는 넬슨 만델라 게이트웨이. 20여 분이면 도착한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샌프란시스코를 가본 적이 있는 기자가 본 로벤 아일랜드는 마치 영화 ‘더 락’의 배경이 되는 알카트레이즈를 닮아 있다.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섬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물살이 빠르고 상어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라는 점에서 배 없이는 절대로 빠져나가지 못하는 천혜의 감옥이 세워진 것이 알카트레이즈와 같다.

현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관광지가 된 로벤 아일랜드에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흑인 등 유색인종을 억압하는 감옥이었다는 점이다.

이미 17세기 말부터 감옥이 있었던 로벤 아일랜드는 아파르트헤이트 기간을 거치면서 자유와 평등을 갈망하는 흑인들을 가뒀던 감옥으로 탈바꿈했다. 백인들만이 다닐 수 있는 통제지역에 흑인이 들어가도 바로 로벤 아일랜드로 가는 배를 타야했고 심지어 파업이 아닌 태업을 했다는 이유로 15년형을 선고받고 로벤 아일랜드에 갇힌 유색인종(흑인이 아닌)도 있었다.

로벤 아일랜드에 갇혔던 인사는 수도 없다. 만델라 전 대통령도 여기에 수감돼 징역을 살았고 현재 남아공 대통령인 제이콥 주마 역시 로벤 아일랜드에서 살았다. 국내 정치인이 탄압을 받고 한번쯤 감옥에 다녀온 것과 같다.

바깥 세상에서 받았던 탄압이 로벤 아일랜드에서 없었을 리가 없다. 특히 백인정권은 백인과 유색인종, 흑인을 완전히 차별했다.

백인의 경우 가족들의 면회가 허용됐고 식사도 바깥보다는 못하지만 충분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도록 식단이 짜여졌다. 유색인종 역시 면회가 조금 제한되고 식사가 백인보다 못할 뿐이었다. 이에 비해 흑인들은 유색인종보다 훨씬 영양가도 떨어지고 식사량도 극히 제한됐다. 감옥에서도 평등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 때문인지 흑인 정치범들은 나름대로 그 곳에서 살 길을 찾았다. 바로 스포츠였다. 움직이기 좋아하고 운동을 좋아하는 그들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 로벤 아일랜드 교도소에 수감됐던 흑인들은 자체 축구협회와 리그를 창설하고 주말마다 축구를 즐겼다. 그들이 축구를 즐겼던 구장은 잔디 대신 잡초만이 무성하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이 가운데 축구가 가장 인기 있었다. 처음에는 축구를 하지 못하도록 금지당했지만 간수와 교도소장에게 끊임없이 탄원을 넣어 축구를 할 수 있는 자유를 쟁취했다. 유니폼을 주문 제작해 팀을 만들었고 자체 리그까지 창설했다. 결국 그들은 규정까지 만들면서 마카나축구협회를 창설했다.

마카나축구협회는 축구를 통한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는 뜻 깊은 역사를 만들어냈고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지난 2007년 명예협회 자격을 부여받았다. 또 FIFA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경기 이상의 의미(More than Just a game)’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까지 제작됐고 조 추첨행사가 벌어진 기간에 로벤 아일랜드에서 FIFA 정기 총회까지 열렸다. 

▲ 로벤 아일랜드에 한때 수감됐던 적이 있는 흑인 할아버지가 가이드가 되어 관광객들에게 당시 생활상 등을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로벤 아일랜드에 가보면 이곳에서 옥살이를 했던 흑인 할아버지들이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주며 설명해준다. 만델라 전 대통령이 수감됐던 독방도 볼 수 있고 그가 즐겨했던 테니스를 했던 코트도 밟아볼 수 있다. 축구경기가 벌어졌던 그라운드는 이제는 잔디 대신 잡초들이 무성하지만 감회가 남다르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한국 관광객은 극히 드물다는 것이 현지 한인 여행사의 얘기다. 주로 패키지로 오는 사람들은 테이블 마운틴과 희망봉을 찾을 뿐, 이곳의 아픈 역사를 알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이다.  

▲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이 수감됐던 독방. ⓒ천지일보(뉴스천지)
 
그러나 한번쯤 케이프 타운을 찾는다면 워터프론트에서 로벤 아일랜드로 가는 배를 꼭 타보기를 권한다. 7km쯤 떨어진 바다를 20여 분 동안 항해하며 물개와 돌고래도 볼 수 있어 나름대로 운치가 있고 로벤 아일랜드에 들어서면 우리의 아픈 역사와 너무나도 닮아있는 고단했던 삶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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