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강제징용 시설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가능성이 유력해졌다. 지난 4일 교도통신과 NHK 등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산하 민간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일본의 메이지(明治) 산업혁명 유산’ 23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도록 유네스코에 권고했다고 보도했다.

일본은 지난해 규수와 야마구치현에 있는 중화학 산업시설 23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한 바 있다. 바로 이 중 최소 7곳에서 11곳이 조선인 강제노동 피해가 발생한 곳이다. 죽기 전에는 나오지 못한다고 해서 ‘지옥섬’으로 불렸던 하시마. 일본 나가사키항에서 18㎞ 떨어진 이곳은 대표적인 조선인 강제징용 시설이다. 태평양전쟁 시기 이곳으로 강제징용된 조선인 노동자는 800여명에 달하며 이들은 일본 패전 때까지 굶주림에 허덕이며, 열악한 환경과 가혹행위에 시달려야 했다. 해저 700m 탄광에서 하루 12시간을 누워서 탄을 캐야 하는 가혹한 노동조건으로 결국 122명이 목숨을 잃는 곳 하시마. 억울하게 죽은 조선인 원혼들이 아직도 그 눈을 감지 못하고 떠돌아다닐 것만 같다. 그런데 바로 이곳을 일본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고 한다. ‘근대화의 상징’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이뿐 아니다. 하시마에서 5㎞ 거리에 있는 다카시마도 조선인 3500명이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다 상당수가 목숨을 잃었으며, 나가사키 미쓰비시 조선소에 끌려가 군함을 만드는 데 강제징용된 조선인 중에는 1945년 8월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됐을 때 목숨을 잃은 이들이 많다.

자신들의 욕심과 야욕으로 말미암아 전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고, 조선을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갖은 술수와 무력으로 강제병합한 일제의 만행은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면서도 아직도 그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을 향해 펼쳤던 강제징용과 위안부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으면서도 사죄하지 않는 일본. 그들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바로 이번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에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물안개가 낀 날에 보면 군함처럼 보인다고 해 일본어로 ‘쿤탄지마(전함섬)’으로 불리기도 하는 하지마섬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끌려간 조선인 징용자들이 처참한 죽음을 당한 곳이다. 일본인들에게 이 섬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단지 자신들의 역사와 함께해왔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민족의 한이 서려있는 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 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사실 일본은 이미 오래전부터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규슈, 야마구치와 관련 지역’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물밑 작업을 해왔다. 강제징용의 아픔과 어두움이 서린 곳을 ‘근대화의 상징’이라는 그럴싸한 이유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요청한 일본의 후안무치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다. 일본의 이런 후안무치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청신호를 보내고 있는 유네스코 또한 역사의식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일본이 유네스코 예산의 10.8%를 분담하고 있다는 것이 이번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에 이어 유네스코 자금줄 2위라는 영예 아닌 영예를 안고 있으니 유네스코 사전심사에서 이미 ‘긍정 검토’ 결정을 받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돈이면 그 배경이야 어떠하든 상관없는 지경에 이른 것인지 참 답답하고 안쓰러울 따름이다.

일본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역사왜곡은 ‘누워서 떡 먹기’ 정도로 쉽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와 같은 현상은 현 아베정권이 들어서면서 더욱 심해졌다고 할 수 있다. 아베 총리는 과거사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은커녕 위안부 문제를 두고 “인신매매의 희생자가 된 그들을 생각할 때 가슴이 아프다”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한 그들에 대한 생각은 과거 정권과 다르지 않다”는 식으로 논점을 회피하려 하는 등 역사의식의 부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그의 이와 같은 발언은 위안부 문제 등에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조직적 개입 사실을 교묘하게 부정하는 발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물론 미국 국무부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인신매매라는 표현을 쓰고 있으나 이는 국가 개입과 강제성을 지닌 여성 착취를 포함하고 있지만 아베 총리가 말한 ‘인신매매’는 부모나 민간업자에 의한 매매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더욱 괘씸한 발언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이라는 허울 좋은 껍데기를 입었다고는 하지만 일제에 의한 조선인들의 강제동원과 일본이 일으킨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그리고 태평양전쟁 등과도 직‧간접적으로 관련됐던 군사지원 시설 등이 대다수 포함돼 있다는 사실, 즉 일본이 신청한 23개 후보지가 대륙 침탈과 군국주의의 산물이라는 것을 안다면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먼저는 일본 스스로가 포기해야 할 부분이요, 유네스코에서도 돈이 아닌 역사와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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