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丘)’ 글자 제기(왼쪽)와 ‘환구축판(圜丘祝板)’ 새겨진 나무판 (사진제공: 문화재청)
환구단, 고종이 1897년 재건립한 후 1913년 일제에 의해 헐려 
조선호텔 자리가 환구단 터… 현재 황궁우·석고 3개만 남아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서울시 중구 소공동의 웨스틴 조선호텔 앞에는 3층 8각 건물이 하나 있다. 언뜻 봐도 중요한 문화재로 보이는 이 건물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인 ‘환구단(圜丘壇)’의 부속건물로 ‘황궁우’다. 현재 사적 제157호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유교적 세계관에서는 ‘황제국’ 만이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었다. 즉 ‘황제국의 상징’이 바로 환구단이다.

조선은 1456년(세조 2)에 일시적으로 제도화해 1457년에 환구단을 설치하고 제사를 드렸으나, 1464년(세조 10) 제사를 마지막으로 환구단에서의 제사를 중단했다.

이후 고종이 대한제국의 수립을 준비하면서 1897년 현재의 웨스틴 조선호텔 일대에 다시 환구단을 세우고 이곳에서 황제 즉위식을 거행했다. 고종의 이러한 환구단 건설과 환구제 복원은 중국과의 단절과 자주독립국의 수립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 3층 8각의 황궁우가 보인다. 환구단이 있던 터에는 조선호텔이 들어섰다. (사진제공: 문화재청)
1913년 일제에 의해 환구단은 헐리고, 그 터에는 조선호텔이 들어섰다. 현재 환구단 터에는 황궁우와 석고 3개만이 남아 오랜 세월이 흘렀음을 말해준다. 황궁우는 1899년에 만들어진 3층의 8각 건물이며, 악기를 상징하는 듯한 모습의 석고에는 화려한 용무늬가 조각돼 있다.

최근 국립고궁박물관이 독립된 황제국의 상징인 환구단과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환구제(圜丘祭)를 재조명하는 테마전시 ‘황제국의 상징, 환구단과 환구제’를 지난 5일부터 시작해 12월 말까지 연다. 전시에는 환구단과 환구제에서 사용한 유물을 최초로 공개한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소장 유물 중 황천상제(皇天上帝, 하늘 신), 황지기(皇地祇, 땅 신),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 등의 신위를 황궁우(皇穹宇)에 봉안할 때 사용한 ‘신위병풍(신의, 神扆)’을 비롯해 각종 제기 등의 유물이 환구단과 환구제에서 사용됐던 의례용품임을 밝혀내고 이번에 처음으로 선보인다.

▲ 황천상제(皇天上帝, 하늘 신), 황지기(皇地祇, 땅 신),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 등의 신위를 황궁우(皇穹宇)에 봉안할 때 사용한 ‘신위병풍’ (사진제공: 문화재청)
‘신위병풍’은 대한제국을 수립하면서 만든 의례서인 ‘대한예전(大韓禮典)’에 실린 ‘신의(神扆)’ 도설 내용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나무에 붉은 칠을 한 곡병(曲屛)으로, 용·봉황·모란 등의 무늬를 새겼으며, 각 모서리의 용머리 장식과 맞물린 부분을 보강하는 쇠붙이인 장석(裝錫)은 도금을 해 품격을 높였다.

아울러 ‘환구축판(圜丘祝板)’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환구제의 축문을 올려놓는 나무판인 ‘축판(祝板)’과 붉은색으로 ‘구(丘)’ 자를 적어 넣은 제기들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의식(祭天儀式)을 행할 때 사용된 다양한 그릇, 도구 등도 전시된다.

또한 전시에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촬영된 환구단의 사진과 현재의 사진을 비교하며, 일제강점기 때 황궁우와 삼문 등을 제외한 시설 대부분이 헐린 환구단의 참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한국풍속풍경사진첩 속 환구단 (사진제공: 문화재청)
‘황제국의 상징, 환구단과 환구제’展은 일반에 최초로 공개되는 유물들과 훼손되기 전의 환구단이 담긴 사진, 관련 의궤에 실린 그림과 설명을 통해 환구단의 원형과 대한제국기 최고의 위상을 지닌 국가의례였던 환구제를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전시다.

국립고궁박물관은 “당시의 시대적 혼란 속에서 환구단의 설치와 환구제의 재개가 의미하는 바를 되새겨보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전시는 국립고궁박물관 1층 ‘왕실의 의례실’에서 진행되며, 무료 관람이다. 국립고궁박물관 야간 특별관람 기간(5.2~14, 매주 월요일 제외)에는 밤 10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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