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가 르네상스 미술의 전성기를 이끈 3대 거장 중 하나인 라파엘로 산치오의 성화작품을 매주 연재한다.

미술사에 끼친 영향력에 비해 라파엘로의 작품은 다빈치나 미켈란젤로에 비해 덜 알려진 게 사실. 이에 본지는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으로부터 라파엘로 성화 80여점을 입수해 독자들에게 라파엘로의 작품세계와 일대기를 느껴볼 수 있도록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이는 역사상 최초의 라파엘로 연재다.

2차 세계전쟁 등으로 그의 작품은 대부분이 소실됐거나 현재 소장 위치를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의 작품들이 1세기 혹은 2세기 전 선교용으로 제작한 유리원판 필름에 담긴 덕분에 오늘날 대중 앞에 선보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라파엘로 작품은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의 천문학적인 액수로 판매될 정도로 가치는 상당하다. 이번 연재를 통해 이미 공개된 적이 있거나 또는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그의 작품들이 공개된다. 37세의 나이로 요절한 비운의 천재화가 라파엘로. 그의 안타까운 생애를 위로하는 동시에 작품세계를 느껴보길 바란다.
▲ Raphael, 1483-1520. Tribune of the Church of St. Peter, rome. Florence. (drawing). 라파엘. 성 베드로교회(베드로성당)의 강단(대성전), 로마. 플로렌스. (드로잉). (사진제공: 정성길 명예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 Raphael, 1483-1520 & assts. C. 1515. ACTS of Apostles: St. Peter ant St. John healing the lame man at the beautiful Gate of the Temple, detail, right: head of the beggar. London. Victoria and Albert Museum. (cartoon for tapestry in Vatican). 라파엘과 조수들. 1515년에 제작. 사도들의 행전: 성전 문 앞에서 절름발이를 치료하는 베드로와 사도요한, 오른쪽 상세: 구걸하는 사람(거지)의 머리. 런던.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 (바티칸 태피스트리 밑그림). (사진제공: 정성길 명예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 Italian Painting. Raphael Sanzio. Madonna of the Grand Duke. Pitti Gallery, Florence, Italy(1912). 이탈리아식 화법. 라파엘 산지오. 성모마리아 대공. 피티 미술관, 이탈리아 플로렌스. 1912년에 유리원판 제작. (사진제공: 정성길 명예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유리원판 필름에 담긴 라파엘로의 대작들을 1월 말부터 천지일보가 연재 중에 있다. 이번 호까지 성화작품을 소개하며, 다음 연재부터는 라파엘로가 남긴 초상화, 드로잉 작품, 그 외 작품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간 본지는 지면을 통해 라파엘로의 60여점 성화작품을 공개했다. 이 중 20여점이 지금껏 공개된 적 없는 최초 공개였다. 라파엘로 작품은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리원판 필름으로 제작됐다. 그 덕분에 1·2차 세계전쟁 등으로 인해 불타거나 유실된 작품도 이같이 볼 수 있게 됐으며, 또한 소장 위치가 바뀌어져 볼 수 없게 된 작품도 한자리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번 호에 소개되는 작품은 3점이다. 먼저 성 베드로교회(베드로성당)의 강단과 교회 전경이 드로잉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전해지는 바로는 베드로성당은 로마에서 순교한 사도 베드로의 묘위에 4세기경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최초 성당을 건립한 후 16~17세기경에 원래 있던 베드로성당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신축했다.

1503년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지시로 브라만테가 설계해 재전축을 시작했고, 그가 죽은 뒤 라파엘로가 넘겨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이 신축하기 위한 설계도로 그렸을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대성전과 전경이 함께 그려져 있다는 점이 더욱 뒷받침해준다.

그러나 라파엘로가 맡았을 시기에는 1517년 면죄부 판매 사건으로 인해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나는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로 인해 라파엘로가 주도하는 성당 신축공사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1527년에는 란체스키를 중심으로 한 독일 용병들의 반란으로 공사가 중단됐다. 라파엘로는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3년여 만에 자신의 생일날 죽음을 맞게 된다.

라파엘로가 죽은 뒤 재건축 사업은 안토니오를 거쳐 1546년 거장 미켈란젤로가 이어받아 진행하게 된다. 17세기경에 완성된 이 성당은 브라만테,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등의 뛰어난 예술가들이 참여한 합작품으로 높게 평가되고 있다.

사도행전에서 성전 문 앞에서 베드로와 사도요한이 절름발이를 치료하는 작품 중 오른쪽 일부분을 상세하게 나타낸 그림이다. 구걸하는 거지의 모습을 그렸는데, 남루한 모습을 잘 표현했다. 라파엘이 제자들과 함께 그린 작품으로 설명돼 있으며, 1515년에 제작됐다.

성모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의 작품은 사람의 입체감이 잘 나타났다. 마치 실제 사진을 보듯 입체감이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유리원판에 이탈리아식 화법이라 설명돼 있다.

◆1세기 전 신비함 담긴 ‘컬러 유리원판 필름’
원본에 흡사하도록 붓으로 채색, 샌드위치형 제작

1세기 전 합성수지(플라스틱)로 제작된 흑백필름이 나오기 전까지는 유리원판 필름을 사용했다. 유리원판 필름은 인화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대중적 인기를 얻었으나 선교사업 목적으로 슬라이드 방식으로 제작된 필름은 소수의 특수한 부류만 이용했다. 슬라이드 방식은 영상 교육용으로 사용하던 필름이다.

특히 신비감을 갖게 하는 것이 컬러 유리원판 필름이다. 당시 필름은 감광도가 매우 낮은 건판으로 0.2mm 유리판에 감광재료를 바른 후 젤라틴 막을 입혀 촬영하면 실상과 반대인 네거티브(음화)로 찍혀지고 이것을 다시 실상과 같은 포지티브(양화)로 반전시킨 후 그 위에 원색에 가까운 칠을 해 컬러 유리 원판으로 만든 것이다.

쉽게 말하면 현품을 찍어 나온 유리로 된 흑백필름에 붓으로 색을 칠한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 유리를 덧씌워 ‘샌드위치형’으로 만든 것이다. 이같이 만들어진 슬라이드 유리원판 필름은 환등기를 통해 영상자료로 사용됐다.

이 컬러 유리원판 필름에는 특히 고흐, 피카소 등의 명화 작품 뿐 아니라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렘브란트 거장들의 성화 작품이 들어가 있다. 현품과 흡사하게 제작돼 있어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 환등기와 여러 성화작품이 담긴 유리원판 필름의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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