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김현진 기자]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간토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사건을 기억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관동대지진(간토대지진) 사건은 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지역에서 강도 9.7의 강진이 발생하자 일본의 집권층은 흉흉해진 민심의 타켓을 조선인에게 돌리기 위해 ‘조선인들이 방화를 했다. 우물에 독을 풀어 넣었다.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퍼트린 후 자경단을 조직해 조선인들을 무참하게 학살한 사건이다. 당시 학살된 조선인은 7천명에서 많게는 2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을 일본은 역사교과서에서 삭제하는가 하면, 또는 미화하거나 누락 기술하는 등 왜곡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은 그렇다 치고 정작 우리나라 교과서에서는 중국의 난징대학살은 언급해도 관동대지진 학살 사건을 언급한 것이 거의 없는 실태다. 안타까움을 넘어 한심한 생각이 들게 하는 작금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관동대지진 사건을 배경으로 한 연극 ‘물의 노래’가 곧 막이 오르게 돼 눈길을 끈다. 연극 ‘관객모독’에서 명콤비로 호흡을 맞춘 기주봉, 정재진이 1년 만에 다시 연극 물의 노래에서 호흡을 맞추게 됐다.
물의 노래 줄거리 배경은 관동대지진 사건이 발생한 1923년 9월이다. 집안대대로 우동집을 운영하는 와타나베(기주봉 분) 가게에 조선인 가족이 숨어든다. 무차별 학살을 자행하는 자경단으로부터 더 이상 피해 다닐 수 없었던 조선인 가족은 최후의 보루로 단골집이었던 와타나베 가게를 찾아온다.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몸까지 다쳐 멀리 달아날 처지가 못되는 이들 조선인 가족은 죽기 전에 우동이나 먹고 죽으면 여한이 없을까 하는 심정으로 밤중에 찾아왔고, 와타나베는 이들을 기꺼이 손님으로서 맞이한다.
그리고 이들을 창고에 숨겨주지만, 위기가 찾아온다. 집집마다 의무적으로 자경단에 참여하라는 방침에 따라 자경단 활동을 하는 아들 히데오(박상협 분)에게 발각돼 갈등을 겪게 된다. 조선인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일본인을 죽일 거라는 소문을 듣고 이를 굳게 믿는 히데오와 직접 본 것이 아니면 보기 전까진 절대 믿지 말라며 아들을 설득하는 와타나베.
여기에 경찰로 근무 중인 친구 이와사키(정재진 분)까지 와타나베가 조선인을 숨겨줬다는 사실을 알고 친구를 설득하러 나타난다. 이와사키 역시 조선인에 대한 소문이 잘못된 유언비어라는 것을 상식적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친구가 위험에 빠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어 와타나베를 끈질기게 설득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와타나베는 가족을 지키느냐와 무고한 조선인을 지키느냐와의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결국 점점 좁혀 들어오는 자경단의 수사망 속에서 와타나베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생명의 상징인 우물에 조선인 식구를 숨겨주는 고귀한 선택을 하게 된다. 티클 조차 들어가는 것을 용납지 않을 정도로 가장 아끼던 우물에 조선인 식구를 숨겨주는 그의 선택. 그의 이러한 선택은 일본인과 조선인의 경계를 넘어 평화와 인류애를 말하기 위함이다. 와타나베의 고귀한 선택이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 궁금하다.
공연은 5월 3일부터 9일까지 마포아트센터에서 6회 공연된다. 평일은 오후 8시, 주말 및 공휴일은 오후 4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