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위원 시인

 
해마다 ‘법의 날’ 무렵에 필자는 이상하게도 입법기관인 국회나 ‘법의 날’ 행사를 주관하는 법무부보다 법제처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법제처는 법을 만드는 입법부가 아니지만 정부부처 가운데 정통한 입법 활동을 수행하며 또 국회에서 통과돼 정부로 넘어온 각종 법률에 대한 공포·시행 등 총괄적인 업무를 관장하는 일들로 해서 법제화를 전문기능으로 하는 중앙행정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온전한 법치를 위해서는 어느 부처보다 법제처 구성원들이 조직 엘리트화(化)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여러 차례 글을 통해 주장해왔던 것이다.

지난 4월 25일이 ‘법의 날’인 바, 유래나 날짜 등을 살펴보면 법만큼이나 복잡하다. 1958년 미국변호사협회장 라인이 제창한 ‘법의 날’ 제정 의견을 미국 정부가 받아들여 세계 최초로 그해 5월 1일을 법의 날 기념일로 제정했다. 굳이 5월 1일로 정한 이유는 사회주의 국가의 ‘노동절’에 대항하는 의미에서 자유주의국가에서 그날을 법의 날로 정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에서인데, 우리나라도 1964년에 5월 1일을 법의 날로 지정해 기념해왔으나 노동자의 날과 겹쳐진다는 이유로 2003년에 헌법재판소가 만들어진 4월 25일로 변경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국민에게 법을 준수하는 마음을 갖게 하고, 법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기 위해 제정된 기념일이어서 각종 행사는 법무부가 관장하고 있다. 법의 날을 맞는 필자 생각은 정말 좋은 법이 만들어져서 사회질서가 반듯한 가운데, 국민이 각종 위협으로부터 무서움을 떨쳐내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토대가 돼야 한다는 기대치다. 그렇다면 좋은 법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법의 정통성과 인간의 존엄성 보호가 잘 조화된 가운데 국민이 잘 지킬 수 있어야 하고, 또 알기 쉽게 되어 누구라도 인지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야 하는 점을 주장해본다.

법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사회적 안전장치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성완종 게이트를 겪으면서 국민은 우리 사회의 불완전성과 불안전성에 대한 회의가 큰데, 국가·사회 지도자들의 ‘답지 못하다’는 행동에서 기인(起因)된다고 보는 바, 공직자의 해이한 행태와 사회구성원들의 안전불감증이 각종 사고로 이어지고 있음에 유의한다. 사회구석에 잔존하는 문제점을 미리 찾아 획기적으로 고치고 건전사회로 지향해 나가야 함에도 일이 터질 때마다 변명으로 일관하고, 여야나 정부가 국민여론에 반(反)해 어물쩍 넘어가려는 행동들을 보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충격적인 사고·사건들이 발생할 때마다 필자는 국가·사회 구성원들, 특히 그중에서 지도자들의 주인의식의 결여에 답답해하며 고려 때 충담사가 쓴 안민가(安民歌)를 떠올린다. “군답게, 신답게, 민답게 할지면 나라 안이 태평하니이다(君如臣多支民隱如爲內尸等焉 國惡太平恨音叱如)”는 문장은 왕조시대의 정치 교훈이라고는 하나, 오늘날에도 꼭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각자가 제 책임을 다할 때에 나라 안이 태평해진다는 가르침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이는 아무래도 피치자(被治者) 민중보다는 치자들의 솔선수범을 강조하는 대목이라 할 것이다.

세월호 사고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관피아’라는 말을 자주 쓰고 있다. 관료마피아로 대변되는 전관예우와 민간 유착에 따른 폐해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멍들게 해왔다. 지난번 세월호 사례와 같이 해양수산부 퇴직 공무원들이 해수부 산하 민간기관에 취업해 대충 일을 봐주다가 대형참사가 터졌던 것처럼 관료와 민간이 사익을 챙기기 위해 작당(作黨)하는 것은 발본색원해야 한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관피아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고 있다.

관피아라 하면 단연 기획재정부, 산자부, 해수부, 국토부 등이다. 산하 공기업이 많아 그동안 관피아를 적잖게 배출한 이들 중앙부처 등에 대해서는 퇴직관료들의 유착 방지제도를 강화할 필요가 있겠다. 그렇다 해도 엉뚱한 곳으로 불똥이 튀는 피해는 막아야 한다. 법제처는 산하기관이라 해봐야 법제연구원 등 몇 개 안되고, 그 기관들은 규제를 하거나 힘쓰는 곳이 아니라 하는 일들이 법령서비스, 법률교육과 홍보를 하는 기관이다. 그런데 관피아 방지대책을 세우라 하니 법제처 산하기관까지 관피아로 몰아붙이는 생뚱맞은 일이 벌어진다.

누가 법제처를 관피아라 몰아붙이는가. 오랫동안 법제에 관한 전문성을 닦은 법제처 퇴직자가 산하기관인 법제연구원 등에서 계속 일하게 된다면 그 역량을 통해 기관을 발전시키는 그야말로 바람직한 일이 아닌가. 들리는 소문으로는 관피아 방지를 빌미삼아 법제 전문가 퇴직자들에게 족쇄를 채우고, 대신에 법제업무와 무관한 낙하산 인사를 그 자리에 앉히려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돈다. 필자는 그동안 중앙부처에 일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알게 된 법제처 구성원들의 열성과 입법 관리에 대한 전문성을 다시금 높게 평가한다. 그러면서 묵묵히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엘리트들의 사기를 꺾는 엉뚱한 일이 조직 안팎에서 꾸며질까 적이 우려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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