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휘 여의도연구원 정책자문위원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의 승리로 종전된 베트남전쟁에 당시 한국은 연인원 32만명을 파병했다. 한국 입장에서는 동맹국인 미국의 참전요청을 거부할 수 없는 외교적인 상황 가운데 어렵게 참전을 결정했다. 베트남전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해외파병이라는 한국군의 새로운 전사(戰史)를 썼지만 남베트남의 패망으로 희생의 보람을 상실한 전쟁으로 기억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군이 남베트남을 위해 흘린 피와 땀은 당시 국가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점에서 별도의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4월 8일 오전에는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이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증언을 하기 위해 베트남인 응우옌떤런(64)씨와 응우옌티탄(56)씨가 방한해 종로구 견지동에 있는 ‘평화박물관’을 찾아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이라는 사진전에 초대됐다. 두 베트남인들은 지난 베트남전쟁에서 가족들이 한국군에 의해 학살됐다고 주장하는 피해자였다. 그들은 학살 피해자의 입장에서 고발하려는 뜻보다는 전쟁의 참혹했던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선의(善意)와 가해자인 한국군에 대해 사과(謝過)의 기회를 주고자 하는 화해(和解)의 메시지를 가지고 왔던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나 일부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의 극렬한 반대집회가 계속되면서 주최측과 베트남 손님들에게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응우옌떤런씨와 응우옌티탄씨의 증언이 9일 대구 경북대학교 캠퍼스 안에서 이어졌다. 그들은 심장으로 얘기한다는 말로 역사의 진실을 들어달라고 했고, 어떤 원한이나 증오심을 부추기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고도 했다. 참석한 시민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내 그들의 용기와 아픔을 격려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전쟁과 민간인 학살사건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전장의 비정한 현실이라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장군인이 비무장 민간인을 상대로 총질을 한다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될 반인륜범죄이기에 반드시 성찰돼야 한다.

9000여명에 달하는 한국군 학살피해자 위령비를 세워서 진정성있는 사과를 보여주고, 베트남 국민들과의 화해를 통해 베트남 종전 40주년의 의미를 새기는 것이 한국군답지 않은가?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의 헌신을 조국이 명예롭게 잊지 않듯이, 한국군의 명예는 전투현장의 과오를 사과한다고 해서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고사성어를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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