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미국 대통령 선거와 그 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의 선거 캠페인(Campaign)은 지상 최대의 정치 쇼(Show)다. 선거라는 그 정치 쇼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가장 중요한 정치 행사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세계 어느 나라의 어떤 선거보다도 선거비용이 가장 많이 든다. 이 때문에 미국의 민주주의를 ‘달러 민주주의(Dollar Democracy)’라고 비꼬아 부르기도 한다. 남편인 빌 클린턴이 이미 대통령을 지낸 여걸(女傑),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대권 레이스(Race)를 본격화했다. 만약 힐러리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동서고금을 통틀어 부부가 최고 권자에 오른 초유의 역사적인 사변이 된다. 지금까지 부부 둘 다가 황제나 임금을 지내거나 대통령을 지낸 일은 역사에 없다.

힐러리는 자신의 선거 비용으로 자그마치 25억 달러를 모금할 계획이다. 우리 돈으로 치면 대략 2조 5000억원에 달한다. 어마어마한 액수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선거에 쓰이는 돈을  민주주의를 위한 사회적 비용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한 사회적 비용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이처럼 선거에 드는 비용이 단위가 가장 크다. 이 돈이 낭비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돈이 투명하게 드러나고 국민이 향유하는 민주주의 가치를 창출하는 한 낭비라고 할 수는 없다. 힐러리의 라이벌 진영인 공화당 측에서도 엇비슷한 규모의 돈을 모금하고 선거에 사용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대통령 선거에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미국인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해서 선거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선거가 없으면 민주주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땅도 넓고 인구도 많은 큰 나라다. 그에 따라 민주주의 비용이 이처럼 천문학적인 단위로 들어가는 것이 불가피하다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우리의 어느 해 대선에서처럼 ‘차떼기’로 불법 음성 선거 자금이 지하로 흐르지는 않는다. 굳이 불법 음성자금을 동원해 돌리고 하지 않아도 그들은 충분히 합법적으로 돈을 동원하고 쓰고 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선거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가 남편을 따르는 부창부수(夫唱婦隨)’가 아니라 ‘남편이 아내를 따르는 부창부수(婦唱夫隨)’라고나 할까, 남편 빌 클린턴은 대통령이 되려는 ‘힐러리가 자랑스럽다’고 했다. 빌 클린턴은 그 전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촌철살인 식 표현으로 힐러리를 띄우는 데 공을 들여왔다. 그러니까 힐러리는 자신에 앞서 그 엄청난 선거를 2번이나 성공적으로 치러냄으로써 대통령을 연임한 그 같은 남편과 무촌(無寸)으로 더불어 사는 부러운 처지다. 힐러리는 그야말로 경쟁 상대가 없는 최고의 참모를 끼고 사는 셈이다. 더구나 현직 때 백악관 집무실에서의 일탈된 바람기로 힐러리의 애를 태운 업보도 있으므로 빌 클린턴은 가장 충실한 선거 캠프의 집사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미국 대통령에 도전하는 오늘의 연부역강한 힐러리를 만든 것은 물론 출중한 자신의 능력을 제외한다면 그를 발탁해 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다. 오바마는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자신과 치열하게 겨뤘던 힐러리를 국무장관으로 기용함으로써 대통령 출마에 아주 중요한 경력을 쌓게 했다. 동시에 하는 일이 없어 국민들로부터 잊힐 ‘공백(空白)’을 없애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국정에 도움이 된다면 정적의 기용도 마다하지 않는 오바마의 포용력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미국의 정치 풍토가 오늘의 힐러리를 만들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바마는 남북전쟁 때의 대통령이었던 링컨을 그가 당이 다른 공화당 대통령이었음에도 유달리 존경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링컨도 대통령이 되고 나서 그와 공화당 예비경선에서 치고받고 코피나게 싸운 윌리엄 슈어드(William Seward)를 국무장관으로 발탁한 일이 있었다. 오바마는 이같이 정적을 껴안는 포용력까지도 링컨으로부터 배웠을 수 있다. 그 포용력이 힐러리가 대통령이 돼 미국이 우리보다 한 발 늦긴 하지만 처음 여성 대통령을 맞는 역사적 사변을 낳게 할지 모른다.

힐러리가 대선 행보를 공식화함으로써 그의 일거일동과 말 한마디가 언론과 국민으로부터 집중적으로 조명을 받고 있다. 그의 사생활까지도 포착되면 그것이 보호 대상이라기보다는 당연히 국민이 알아야 될 뉴스거리에 불과하게 된다. 이것이 국민이 주는 큰 권력에 도전하는 정치인의 인과응보(因果應報)적 운명이다. 정치인은 한편으로는 자신의 일거일동과 말 한마디가 주목받는 환경과 조건을 능란하게 활용할 줄 알아야 하며 잘 활용해야 성공한다. 그건 쇼다. 그렇지만 그 쇼를 잘 기획하고 조직하고 후보 자신과 그의 캠프가 혼연일체가 된 오케스트라처럼 잘 연주해내고 공연해내고 연기로 풀어내어야 소기의 목적에 다가갈 수 있다. 다만 거짓말과 거짓, 위장, 가식, 불성실은 안 된다. 그것은 들통이 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선거권자들은 정치인들이 벌이는 쇼의 겉모습에 정신을 파는 것이 아니라 그 쇼에 함유된 진실의 함량을 날카롭게 지켜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나 진실을 이기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

힐러리에 대한 반대 진영의 공세도 전방위로 가해져 오고 있으며 힐러리의 반격이 유발됨으로써 미국의 대선 싸움은 점입가경으로 치닫는다. 그것은 더 없는 구경거리일 수도 있고  들뜬 축제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선거권자들은 구경에만 미치거나 들뜨지만은 않는다. 그 속에서 뭔가 진실과 후보들의 진정성을 찾아보려 애쓰는 것은 미국이나 우리나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 위기론이 제기되지만 아직 민주주의가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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