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위원 시인

 
중국 역사 드라마가 재미있어 필자가 즐겨 TV를 보는데 대개는 청나라 때 이야기다. 건륭제 시대의 내용이 대부분인 바 청나라 제6대 황제 건륭제는 재위기간이 60년이고, 태상황제로 실권을 장악했던 4년까지 합치면 역대 황제 가운데 최장 기간 재위했던 인물이다. 그 당시 청나라 영토가 460만㎢였으니 중국 역사상 원나라 이후 가장 큰 영토를 가진 제국이었다. 그러하니 건륭제와 관련해 가장 많은 전설과 야사가 전해지고 있어 드라마가 많을 수밖에 없다.

최근 국내 케이블TV에서 방영된 건륭제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만 해도 ‘진가건륭’ ‘건융왕조’ ‘황제와 나’ 등 숱하게 많고, 그 드라마를 통해 필자는 건륭의 치적과 에피소드를 알 수 있었다. 건륭제가 등장하는 드라마 내용이 중국 역사 중 정사(正史)에 속하는지 야사(野史)에 근거한 것인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국내 방송된 각종 드라마를 통해 건륭제 재위기간(1735∼1796) 동안 일어난 사건과 주요 인물에 대해 개략적으로는 알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옹정황제의 5남으로 태어난 건륭은 어려서부터 영민하여 그 할아버지 강희황제의 보살핌으로 일찍부터 제왕학을 교육받고 마침내 청나라 제6대 황제 자리에 올랐다. 학문과 예술을 장려하며 나라를 부흥케 했으니 중국 역사가들은 강희(康熙), 옹정(雍正), 건륭(乾隆) 3대에 걸친 134년간 이 시기를 ‘강건성세(康乾盛世)’라 부른다. 그러하듯 건륭제 시대는 청나라 최고의 황금기로 불리는데, 건륭제가 직접 출전한 10번의 전쟁에서 모두 승리해 자신이 ‘십전노인’으로 불리기를 원했다는 내용에서도 나라 안팎에서 그 시대의 융성이 증명되고도 남는다.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던가. 청나라 최고의 전성기를 이끌며 60여년간 태평성세를 이어온 건륭제였지만, 잘못된 인재 등용으로 인해 치세 말년은 사치와 부패로 얼룩졌다. 그 대표적 관료가 바로 화신(和珅)으로, 화신을 두고 ‘중국 역사상 최고의 탐관오리’로 치고 있다.

한 시대에 최고의 권력을 가진 황제와 그에 빌붙어 20년 넘게 승승장구했던 2인자가 국정에 간여했으니 그 당시 일어났던 일의 진위를 차치하고서라도 숱하게 일어난 스토리들을 토대로 해서 훗날 역사 드라마가 탄생했는지는 서두에서 이미 적시한 바와 같다.

국내 케이블 방송인 히어로나 중화TV 등에 방영된 드라마 ‘건융왕조’와 ‘황제와 나’에서 화신 이야기들은 각기 다르다. 어느 쪽은 화신이 가난한 집안 출생이라 했지만 그게 아니다. 사서오경에 통달했던 화신은 20세 약관에 정2품직에 올랐던 조부 덕분에 조상의 벼슬, 삼등경기도위 직위를 세습받는다. 23세엔 황제 곁에서 일하는 삼등시위로 발탁되고 27세에는 군기대신의 중책을 받았으며, 31세에 호부상서(현 재무부 장관)에 오르는 등 29년간 중요한 관직에 봉해진 것만 해도 47회에 이르렀으니 화신은 능력 있는 엘리트 관료임에는 틀림이 없다.

게다가 건륭제가 65세에 얻어 애지중지하는 딸 고륜화효공주를 며느리로 맞아 황실과 인척 관계를 맺어 배경마저 든든한 화신이 ‘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의 자리였으니 황제의 환심만 사면 그만이었다. 설사 약간의 잘못을 저지르거나 자신이 돈을 중간에 착취하더라도 황상은 신경 쓰지 않았으니 화신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던 것이다. 심지어 황제에게 진상되는 모든 예물은 화신을 거쳐야 했으니 그의 권력이 얼마나 대단했으랴. 그런 막강한 권력으로 국정을 농단해도 어느 신하, 어떤 관리가 화신에게 감히 대적할 수 있었겠는가.

지난주에 끝난 중국 역사드라마 ‘황제와 나’에서 화신은 더 나아가 건륭제가 선위(禪位)해 청나라 제7대 황제가 된 가경제(嘉慶帝)에 대해 폐위를 도모하다가 발각되는 내용이 방영됐다. 그것이 역사적 사실인지 필자로서는 알 수 없으나 화신이 거짓 황제 폐위조서를 꾸밀 정도로 힘이 막강했다는 표현이 아닐까. 권력을 휘둘러온 화신도 건륭제 사후 그 아들 가경제 때 탐관으로 탄핵받아 제거됐고, 화신으로부터 몰수한 재산이 당시 청조 1년 예산 4000만량과 비교가 되지 않는 8억량이라고 하니 ‘화신이 쓰러져, 가경이 부자 되었다’는 말이 나돌 만도 했다.

건륭제와 화신 이야기를 담은 중국 드라마를 필자는 끝까지 보면서 ‘십전노인’으로 불리기를 원했다는 건륭황제의 치세가 말년에 혼군(昏君)이 돼버린 그 까닭이 희대의 탐관, 화신에 대한 총애 때문이었을까 의문이 갔다. 역사 자료를 통해 화신이 ‘중국 역사상 최고의 탐관오리’임을 알게 된 터라, 그렇게 무소불위(無所不爲) 권력을 휘두르며 국정을 농단한 화신의 말로가 참담하게 끝났다는 역사적 교훈을 보여주는 바, 공교롭게도 지난주에 현 정부 권력 실세들에게 검은돈이 전해진 ‘성완종 게이트’가 불거져 그 의혹들로 나라 안이 온통 혼란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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