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박재현(1964~  )
지구가 얼마나 조용한지
자전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녹슨 바퀴는 삐걱대며 요란한데
생긴 지 수 억 년이 되었어도
고장 한 번 나지 않는 걸 보면
아마도 우주를 창조한 신은
수학자였거나 천재 기술자 아니었는지
아직도 고장 난 시계처럼 삐걱대는 것은
사람 사는 동네뿐

[시평]
어느 현대의 현자(賢者)께서 말씀을 하셨다. 자동차 굴러가는 소리도 저렇듯 요란한데, 자동차 바퀴에 비교할 수 없이 엄청나게 큰 이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는 왜 들리지 않는가. 이 엄청난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지구의 자전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인간의 청력(聽力)이 들을 수 있는 그 한계를 넘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진정 크고 큰 신(神)의 공덕(功德)을 이 작디작은 사람들이 모르고 사는 것이라고 말을 하셨다.

이런 견해와는 다르게, 지구의 자전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은 여느 인간들이 만든 기계들과는 다르게 고장이 나지를 않아 삐꺽거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 시는 말한다. 그리고 이어서 고장이 나서 삐꺽거리는 동네는 오직 사람이 사는 동네뿐이라고.

그렇다! 사람만이 고장을 내는 존재이다. 새로 무엇을 만들어 내기 위해 기존의 것을 고장 내는 동물, 이가 사람이다. 그래서 자연도 훼손하고 동식물도 죽이고, 이 지구마저 고장 내고 있는 것이리라. 사람들이 망가트리는 지구. 그 엄청난 신의 소리도 들을 수 있는 능력조차도 지니지도 못한 사람들은, 자신들만이 가장 뛰어나다고 착각을 하고는, 오늘도 신의 작품을 대책 없이 망가뜨리고 있구나.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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