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 ‘화장’에서 젊고 발랄한 신입사원 ‘추은주’ 역할을 맡은 배우 김규리가 지난 8일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이탈리안 카페 ‘스미스가 좋아하는 한옥’에서 천지일보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은 인터뷰 전 포토촬영에 임하는 김규리 모습. (사진촬영: 이혜림 기자).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이현정 기자] 1997년 잡지 ‘휘가로’ 메인 모델로 데뷔해 ‘학교1’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등으로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현재까지도 수십편의 영화와 드라마에서 활약하고 있는 여배우 김규리. 잠시 자이브를 타며 댄스스포츠의 세계에 ‘살짝쿵’ 외도도 했던 그녀였지만(웃음) 올해로 데뷔 18년차인 연기에 잔뼈가 굵은 김규리는 아직도 연기가 고프다. 그리고 또 배우고 배운다. ‘아~ 연기를 이렇게 해야지’라며 이번에도 다시 배우란 어떤 것인지 공부했다는 김규리. 그녀가 보여주는 영화 ‘화장’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천지일보는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근에 위치한 카페에서 김규리와 영화 ‘화장’을 주제로 한 인터뷰를 통해 그녀의 연기관과 영화 ‘화장’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영화 ‘화장’은 한국 영화계의 살아있는 역사적 존재인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다. 김훈 작가의 ‘화장’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잔인한 삶의 현실 안에서 들끓는 한 남자의 서글픈 갈망에 대한 이야기로 김규리는 발랄한 신입 ‘추은주’역을 맡았다.

4년의 암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오상무(안성기 분)의 말하지 못하는 욕망의 대상이 된 추은주. 영화는 오상무의 감정을 따라 스토리를 이어가지만 방향키를 쥐고 있는 역할을 추은주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는 감정 표현 등 내면연기가 결코 쉽지 않은 캐릭터 추은주에 대해 김규리는 ‘많이 배우고 공부했다’고 표현했다.

김규리는 “극 중 추은주는 중년 남성이 바라보는 ‘젊음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삶과 죽음을 다루고 있는 소재 속에서 젊음의 에너지를 발산해내야 하는 역할이기도 했다. 오상무의 욕망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발랄한 신입’이기도 한 추은주를 어렵게 접근하지 않고 욕심내지 않는 감정선을 따라갔다. 이는 임권택 감독님의 지혜를 경험할 수 있는 대목이다”며 캐릭터의 접근 방법을 설명했다.

김규리는 MBC 예능 ‘댄싱 위드 더 스타’에서 노력형 무용수의 면모를 선보이며 아마추어 답지 않은 관능적인 스포츠댄스를 선보여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방송의 인연으로 그녀는 지난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공연에서 스포츠댄스를 선보였고 당시 이를 지켜보던 임 감독은 젊은 에너지를 발산하는 김규리를 ‘화장’의 추은주 역에 캐스팅하게 됐다. 임 감독은 김규리를 ‘젊음’을 표현해 낼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진 배우로 판단했다.

젊고 발랄한 추은주를 바라보는 중년 남성 오상무의 시각은 그야말로 욕망을 넘어 갈망의 시점까지 도달하지만 두 사람은 영화에서 어떠한 러브신 없이 선을 지키며 상사와 부하로만 머문다. 영화는 오로지 남자의 시점 즉 오상무의 시각으로, 혹은 이를 연출하는 임 감독의 시각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오로지 남자의 시각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에서 안성기의 분량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분량의 김규리를 만날 수 있지만 그녀는 이것에 대한 아무런 불만도 없다. 분량은 배우에게서 전혀 문제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규리는 “어떻게 보면 안성기 선배님의, 그리고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다. 영화의 플롯을 보면 추은주의 분량은 배우로서 욕심낼 필요는 없다. 나 스스로 스타가 되기보다 배우가 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분량이 적다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내 연기로 과연 어떤 영화가 나오게 되는지,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규리와 임 감독의 만남은 지난 2004년 ‘하류인생’ 이후 10년만이다. 당시 임 감독은 김규리에게 연기에 대한 철학과 현장에 대한 이해, 영화 촬영에 대한 전반을 새롭게 각인시켜 줬다고 한다. 김규리는 그때를 ‘배움의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많은 것을 가르쳐준 스승 같은 임 감독과의 재회는 김규리를 다시 들뜨게 했고 ‘더 잘해야 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고.

“긴 시간이 흐른 뒤 만나게 된 감독님과의 작업은 ‘잘 해야겠다’는 부담감도 생기게 했다. 그래서 더 나 자신을 밀어붙였던 것도 있지만 또 이러한 자신을 통해서 나를 되돌아보게 됐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항상 자신을 낮추시는 감독님의 연륜을 통해 다시 한번 연기란 어떤 것인가를 배우게 된 것 같다.”

▲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 ‘화장’에서 젊고 발랄한 신입사원 ‘추은주’ 역할을 맡은 배우 김규리가 지난 8일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이탈리안 카페 ‘스미스가 좋아하는 한옥’에서 천지일보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은 인터뷰 전 포토촬영에 임하는 김규리 모습. (사진촬영: 이혜림 기자). ⓒ천지일보(뉴스천지)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김규리는 여전히 ‘배우’라는 물음에 끊임없이 답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신중하게 배우의 길을 두드리며 자신이 내린 결정엔 과감하게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김규리. 그녀는 자신의 연기가 ‘해장국처럼 속 시원한 연기’였으면 좋겠다고 한다.

데뷔 18년차지만 아직도 ‘연기에 모든 것을 쏟아 내는 배우’를 선보이기 위해 끝없이 두드리며 배우의 길을 걸어가는 김규리. 아마도 노장은 김규리의 열정에 반해 그의 102번째 영화에 그녀를 초대했을지도 모른다.

한편 안성기, 김호정, 김규리 주연의 영화 ‘화장’은 지난 9일 국내 개봉했다. ‘화장’은 지난해 베니스‧부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돼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은 바 있다. 청소년관람불가, 러닝타임 9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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