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언론인·칼럼니스트

 
지금도 감동이 생생한 20년 전의 할리우드 명화, 멜깁슨 주연의 ‘브레이브 하트(Brave heart)’의 마지막 신은 잊혀지지 않는다. 스코틀랜드 민중 반란 지도자 윌리엄 웰레스는 단두대에 서면서 하늘을 향해 처절하게 절규한다. 그것은 자신의 사랑하는 연인의 이름이 아닌 바로 ‘프리덤(Freedom)!’이었다.

자유, 그것은 잉글랜드에 억압당하는 스코틀랜드인들의 간절한 소망이었다. 그들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처절한 저항을 벌이며 죽음 직전에서도 염원을 외친 것이다. 웰레스의 죽음으로 스코틀랜드는 결국 자유를 얻는다. 그는 지금도 자유를 상징하는 전설적인 영웅으로 숭앙 받고 있다.

민주주의의 최고 가치는 바로 ‘자유’가 아닌가 싶다. 서구 봉건제도에 대한 저항과 피어린 혁명도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역사의 점철이다. 미국의 정치가 패트릭 헨리는 ‘나에게 자유를 달라,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말했다. 죽음과도 맞바꿀 수 있는 가치가 자유임을 갈파한 것이다.

‘종교의 자유’도 헌법에 명시된다. 우리 헌법 제20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돼 있다. 여기에는 종교의 선택·변경의 자유, 무종교의 자유, 종교적 사상발표의 자유, 예배집회의 자유, 종교결사의 자유가 포함한다. 당연히 종교를 이유로 하는 어떤 법적 차별대우도 부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기독교 교단에 ‘강제개종교육’이라는 게 생겨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 2007년 울산에서 이혼한 전 남편이 전 부인을 개종시킨다며 둔기로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강제개종교육 피해자 연대’라는 단체가 결성되기도 했다.

지난 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모 방송 왜곡보도 규탄 현장에서는 강제개종 목회자들에 의해 피해를 받은 피해자의 증언이 잇따랐다. 기자회견장에 나온 신천지교회 신도인 30대 주부는 임신 6개월이던 시기에 자신이 기존에 다니던 교회로 납치돼 감금됐다고 폭로했다.
그녀는 “무더운 여름 날씨임에도 사흘 동안 갇혀 옷을 갈아입지도, 씻지도 못했다”며 당시 강제개종교육의 충격적인 피해를 증언했다. 또 강제 납치돼 개종교육을 받은 한 여학생은 각종 인권유린 사례를 눈물로 호소했다.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3년부터 2015년 3월까지 신천지교회 신자 약 900명이 강제개종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피해자들 중 55%가 교육 당시 협박과 세뇌를, 52%는 감금을 당했다고 호소했다. 또 납치를 당해 끌려갔다고 밝힌 피해자도 42%에 달했다.
어느 누구도 개인이 가지고 있는 종교의 자유를 강제로 바꾸지 못한다. 설령 부모나 남편, 아내 등 가족이라도 그렇다. 사법당국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이런 사례가 백주에 일어나고 있어도 수수방관만 하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미국은 지난 2004년 국제 종교 자유 보고서를 채택한 바 있다. 이 보고서를 보면 한국에 대해 이렇게 명시하고 있다.

‘한국은 헌법에서 종교의 자유를 규정하고 일반적으로 정부에서는 실제 그 권리를 존중한다. 한국 정부는 그 권리를 전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모든 수준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정부 또는 민간 부문에 의한 그 권리의 거부를 허용하지 않는다.’

최근의 개종교육 실례를 보면 한국의 종교자유에 대한 미국의 조사보고 평가가 무색하기만 하다. 헌법을 무시하는 탈법적 개종교육이 성행하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면 진정 종교자유를 누리는 나라는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최후의 만찬에서 열두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어주며 ‘너희들도 나처럼 하라’고 가르쳤다. 상대에 대한 무한한 존중과 배려, 그리고 사랑을 가르친 것이다. 타인이 가지고 있는 신앙과 믿음, 마음까지도 존중하는 자세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자세일 게다. 강제나 억압으로 개인의 종교적 신념을 개조하려는 행위는 전근대적 수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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