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과거 3김시대, ‘동교동계’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따르던 정치집단을 의미했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적잖은 공을 남겼을 뿐더러 최초의 정권교체 주역이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역사가 곧 한국 민주주의 역사와 일정 부분 궤를 같이 한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특정지역을 기반으로 한 계파정치의 폐해가 적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동교동계의 정치적 위상은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큰 의미를 남긴 셈이다.

그러나 3김시대의 종언과 함께 동교동계는 사실상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빛과 그림자를 모두 남긴 채 정치무대에서 퇴장한 그들이 최근 다시 기지개를 켜는 듯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오는 ‘4.29 재보선’에서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와 각 후보들을 지원하는 문제를 놓고 정파적 발언을 쏟아내는가 하면 집단적으로 지분을 요구하는 듯한 언행까지 표출되고 있다. 정치적 재기를 도모한다면 착각이요, 정치적 조언이라면 과잉이다.

시대를 역류하겠다는 것인가

동교동계의 좌장 역할을 하는 권노갑 새정치연합 상임고문이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며 일행들의 의견을 구한 뒤 문재인 대표와 각 후보들을 적극 돕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 운영에서 주류와 비주류를 60:40으로 배분하는 것이 관행이라고 했다. 이에 추미애 최고위원은 동교동계가 지분을 요구한 것이라며 격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반면에 박지원 의원은 당내 화합을 요구한 것이라며 지분을 말한 것이 아니라고 해석했다. 과연 권노갑 고문의 이 말이 무슨 뜻일까.

어떻게 해석하든 권 고문의 표현은 적절치 않다. 심지어 그 발언의 배경마저 ‘동교동계’라는 특정 정파, 그것도 이미 퇴장해서 역사 속으로 들어간 것을 다시 끄집어내서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이라면 너무도 적절치 않다. 과거 엄혹했던 시대에 큰 족적을 남긴 그들이 왜 이 시점에서 다시 선거판을 기웃거리고 있다는 말인가. 당 소속이라면 조용히 도우면 될 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에서, 동교동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그 자리에서 호남정서 운운하며 선거지원을 하느니 마느니 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살아있었다면 지금의 이런 모습을 어떻게 봤을까 싶다.

권노갑 고문의 표현은 당내 단합과 화합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당내 지분 40%로 해석하기엔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혹여 지분을 암시한 것이라면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오만과 노욕에 가깝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부끄럽게 만드는 ‘배덕의 정치’에 다름 아니다. 호남정서를 팔아먹는 ‘구태 중의 구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이쯤에서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동교동계 맨 뒤의 그림자까지도 이젠 역사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작은 이익과 사심에 매몰돼 도도한 민심마저 거역하는 일이 없길 바랄 뿐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