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알의 소리 함석헌 선생. ⓒ천지일보(뉴스천지)

‘씨알’은 ‘하늘이요, 정신’

<씨알의 소리>는 함석헌 선생이 1970년 4월에 창간해 1980년 7월 정부로부터 일방적인 폐간조치를 당하기까지 ‘씨알’들의 소리를 대변하는 그 시대 민주주의의 파수꾼이었다.

‘씨알’이란 말은 민(民), people이란 뜻으로 우리 자신을 모든 역사적 죄악에서 해방시키고, 새로운 창조를 위한 자격을 스스로 닦아내기 위해 만든 단어다.

‘ㅇ’ 은 극대(極大) 혹은 초월적(超越的)인 하늘을 표시하고 ‘·’은 극소(極小) 혹은 내재적(內在的 )인 하늘 곧 자아(自我)를 표시하며 ‘ㄹ’은 활동하는 생명을 표시한다.

한국의 현대사가 낳은 위대한 사상가이자 신학자, 민권운동가이면서 문필가인 함석헌 선생은 사람이 혼자서는 살 수 없으며, 서로 다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한 마음이 되어 사는 것이 진리라는 것을 알리기에 힘썼다.

함석헌은 1901년 3월 13일 평북 용천군 부라면 원성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숭실학교 교사로 있었던 일가인 함석은의 영향으로 3.1운동 참가 후 2년간 학업을 중단하게 된다.

1925년 함석헌은 내촌감삼(內村鑑三) 문하생 6명(김교신, 함석헌, 송두용, 정상훈, 양인성, 류석동)과 ‘조선성서연구회’를 결성한다. 1928년 3월 동경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고국으로 돌아와 오산학교에서 역사와 수신을 가르치게 된다.

그 후 1934년 2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성서조선에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연재하는 등 성경을 알리기에도 힘썼다.

1940년 8월에는 ‘계우회 사건’으로 김혁 선생이 동경에서 체포되고 이 영향으로 평양 대동경찰서에 1년간 구치됐으며, 1942년 5월에는 ‘성서조선 사건’으로 서대문 형무소에 미결수로 1년간 복역했다.

그리고 1957년 함석헌은 정만수 장로가 기증한 천안시 봉명동 농장 1만평에서 ‘씨알농장’을 시작했으며, 1989년 2월 4일 88세의 나이로 그 파란만장했던 일기를 마치게 된다.

어떤 종교, 종파에도 속하지 않고 어떠한 정치세력과도 관계없이, 또한 어떤 형태의 권력숭배도 반대하며 모든 악과 싸우는 것을 사명으로 여겼던 함석헌과 <씨알의 소리>는 하나의 세계를 믿고 그 실현을 위해 세계의 모든 ‘씨알’과 손을 잡았다.

즉 함석헌 선생에게 ‘씨알’은 혼자서 선(善)을 행하는 것이 아닌 우리 모두가 행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단어’이자 ‘민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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