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연 건국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화가

미술가이며 건축가, 생태주의자였던 오스트리아의 훈데르트바서(Hundertwasser, 1928~2000)는 자연의 법칙에서 기이한 모티브를 얻어 예술활동을 펼친 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나 혼자 꿈을 꾸면 그것은 한갓 꿈이지만 모두가 함께 꿈을 꾸면 그것은 새로운 현실의 출발이다.”라고 하였다. 융합의 위력을 강조하는 말이다.

한편, 화가이며 문학가인 미국의 폴 호건(Paul George Vincent O'Shaughnessy Horgan, 1903~1995)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없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묘사한 세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장 클로드 라레슈(Jean-Claude Larreche)는 “제품을 만들어 파는 시대는 끝났다. 스스로 팔릴 수 있도록 제품에 모멘텀(momentum)을 불어 넣어라.” 라고 주장하며 “기업은 기존의 성장이나 환율 등 외부환경을 타고 성장할 수 있지만, 진짜 성장을 하려면 자신만의 흐름을 창조해야 하며 혁신과 고객기반, 마케팅 이 세 가지가 한꺼번에 통합된 방식으로 실행될 때 폭발적인 에너지를 낼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융합의 트렌드에 따라서 작가들도 융합에 대한 이해가 좀 더 넓어져야 할 것 같다. 생각의 융합, 개념의 융합, 행동의 융합, 서비스의 융합, 방법의 융합, 기술의 융합, 산업의 융합, 교육방법의 융합, 학문의 융합, 기술과 경영, 기술과 예술, 경영과 예술, 학문간 융합, 융합적 사고의 융합, 융합적 방법의 융합 등이 사방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이는 분명 작가들에게도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Jeff Koons(1955~)를 비롯하여 수십 년 사이 이러한 융합을 보여주는 작가와 작품들이 관객으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으며 뉴욕은 이미 40년 전에 미술, 음악, 디자인, 패션이 뒤섞여 발전하며 오늘날의 총체적인 문화 산업을 만들어냈다. 한국의 작가들이 성공하기 위하여는 다른 이들이 지식의 융합을 어떻게 이루었는지를 유심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한 분야에서의 창조적 사고 경험이 다른 분야에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음을 우리는 안다.

<미학오디세이>의 저자 진중권은 “중세까지만 해도 예술이란 말은 기술과 학문을 넓게 포함한 의미”라고 말한다. 그리고, 천재적 화가이자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기술자, 해부학자, 식물학자, 도시 계획가, 천문학자, 지리학자, 음악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를 보아도 융합적 사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융합이라고 해서 반드시 깊은 전문성을 요하는 것은 아니다. 얕지만, 넓은 수준의 네트워크의 융합도 창의성에 큰 도움이 된다. <세계의 크리에이티브 공장 뉴욕>의 저자인 엘리자베스 커리드(Elizabeth Currid)는 “갤러리에서의 창조적 교환 활동의 집결 현상은 서로 판이한 두 개의 가치를 갖는데 하나는 전시 작품을 통해서 얻는 표면적 가치이고 또 하나는 사람들끼리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얻는 내부적 가치”라고 하였다. 활동 반경을 넓히고 창조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작가도 소위 ‘open innovation’ 개념을 가져야 한다. 애플(Apple)의 아이팟(iPOD), LG의 휴대폰, Nike, 스타박스, 피겨 퀸 김연아의 성공요인에서도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화가 이우환(1936~)은 “나의 예술관은 한마디로 말하면 무한에의 호기심의 발로이며 그 탐구이다. 작품은 기호화된 텍스트가 아니라 에네르기를 축적한, 모순을 안은 가변성을 갖는 생명체이고 싶다.”고 하였다. 호기심이 창조를 만드는 것은 분명하다.

단, 주의할 것이 있다. 작가들은 융합과 모방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불완전한 융합은 모방이라는 낙인을 안겨줄 것이므로 작가들이 깊이 고민하여야 하는 주제이다. 유럽 및 북미 지역을 수시로 출장 다니는 어느 지인이 며칠 전 내게 한 얘기가 있는데 “유럽에서 여러 전시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한국의 전시들은 주제도 없고 해외의 작품들을 많이 모방한 느낌이 든다.”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느낌이고 검증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한국 작가들은 모방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융합만이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2009년이 막바지에 이른 지금은 “만약 우리 모두가 함께 융합의 꿈을 꾸면 한국미술의 글로벌 경쟁력 위상이 더 높게 올라가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갖게 되는 시점이다. 호랑이처럼 포효할 내년을 기대해 본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