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검찰과 한명숙 전 총리 간에 벌어지고 있는 뇌물수수사건 공방이 이젠 둘 중 하나가 치명상을 받아야 끝나는 사생결판의 승부로 접어들었다. 검찰은 검찰대로 언론을 통해 확인되지도 않은 피의사실을 흘리며 한 전 총리를 압박하고 있고 한 전 총리는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걸고 “단 한 푼도 돈을 받은 적이 없다”며 맞서고 있다. 현재까지 진행된 상황을 정리해보면 이젠 검찰 혹은 한 전 총리 둘 중의 하나가 ‘KO패’를 해야만 종료될 국면이다.

전직 총리이든, 시중의 장삼이사건 범죄 혐의사실이 있으면 누구나 사법당국의 철저한 수사를 받아야 한다. 법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당파가 다른 전직 총리라 해서 사법당국이 언론을 동원한 비열한 여론몰이식 수사를 벌여도 좋다는 법도 없다. 하지만 검찰이 이번에 한 전 총리 사건 수사 과정에서도 지난번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당시 문제가 됐던 ‘피의사실 흘리기→언론의 받아쓰기→미확인 파렴치 피의사실 흘리기→언론의 확대 보도하기’식의 파렴치한 행태를 되풀이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처음 한국일보의 특종보도에서 시작됐다. 한국일보는 11월 13일자 1면에 <참여정부 실세 3명에게 금품줬다>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했다. 한국일보는 이 기사에서“대한통운 전 사장 곽영욱 씨가 금품을 건넨 대상자 중에는 참여정부 당시 입법부와 행정부에서 핵심요직을 지낸 실세정치인 J, K, H씨가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바로 이 보도가 한 전 총리 뇌물수수혐의 사건의 시발이다. 한국일보의 보도이후 언론은 잇단 후속취재에 들어갔는데 이 과정에서 검찰의 교묘한 미확인 혐의사실 흘리기 플레이가 시작됐다. 시중에는 영문이름으로 거론된 인사에 대한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송년모임의 단골 화제도 ‘해당인사가 누구라더라’는 식의 ‘카더라방송’이었다. 여의도 증권가 정보지에도 온갖 루머가 나돌았다. 해당인사로 지목된 정치인들은 되돌릴 수 없는 치명적인 명예손상을 입어야 했다.

마침내 보수언론의 대표주자 조선일보가 4일자 1면에 <한명숙 전 총리에 수만불 줬다>는 기사를 게재하며 익명의 H가 한명숙 전 총리라고 공식화했다. 한 전 총리가 혐의를 단호히 부인하며 ‘확인되지도 않은 피의사실 공표를 중지하라’고 요구했지만 검찰은 “내부적으로 조사했으나 발설자가 없다”고 발뺌했다. 그러나 검찰의 변명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검찰 수사라인에서 흘린 사람이 없다면 기자들이 귀신에라도 홀렸다는 말인가. 검찰은 한 편으로는 발뺌을 하고 한 편으로는 일부신문의 보도내용을 다음날 확인해주는 ‘북치고 장구치고’식 수사를 계속 되풀이했다.

피의사실 공표는 형법상 분명한 불법행위다. 형법 제126조에는 ‘검찰, 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함에 당하여 지득한 피의사실을 공판 청구 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규정돼있다. 하지만 피의사실공표죄로 그간 처벌받은 선례가 거의 없다. 법리적으로 특정사안에 대해 피의사실혐의를 문제 삼더라도 결국 피의자나 한 통속인 검찰이나 경찰이 조사를 해야만 하는 구조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피의사실공표가 가장 문제시됐던 경우는 지난번 노무현 대통령 수사과정이었다. 검찰은 거의 일일브리핑을 하다시피 언론에 노 대통령의 혐의사실을 발표했고 언론은 이를 중계방송했다. 특히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노 대통령이 직접 받은 돈이 한 푼도 없었음에도 검찰은 “부인과 아들이 돈 받은 사실을 설마 몰랐겠느냐”고 몰아붙였고 언론은 여론재판하듯 이를 확대재생산했다. 노 대통령이 비극적으로 유명을 달리한 후 검찰 일부에서는 “혐의사실을 언론에 수시 브리핑하는 식의 수사관행을 시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반성기류가 있었고 실제로 검찰이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가 돌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한 전 총리 사건에서 또 다시 ‘아니면 말고’식의 치고 빠지는 수사관행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검찰의 잘못된 관행은 비단 피의사실공표 문제만이 아니다. 정치적 눈치를 보는 속성이 이번에도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이명박 대통령 사돈기업인 효성그룹의 비자금 수사다. 이 수사는 완전히 밀봉된 채 진행됐다. 수사 진행상황이 도대체 흘러나오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는 이 대통령 사돈의 검찰 소환조사 사실마저 6개월 후에야 드러났다. 그나마도 야당의 수사부진 질타가 이어지자 이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검찰이 스스로 밝혀 알려진 것이다. 뿐만 아니다. 검찰은 한 전 총리 사건의 경우 언론에 보도된 지 1주일 만에 소환통보를 하는 등 속도를 내고 있다. 그야말로 속전속결이다. 그러나 한상률 전 국세청장 뇌물수수혐의 등 현 정부와 관련된 사건수사는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법 집행의 형평성이 심대하게 어긋나 있는 것이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취임 후 검찰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됐던 ‘별건수사’‘압박수사’ 등을 자제하는 등 수사패러다임을 바꿔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 대국민맹세가 헛된 약속인지의 여부는 이번 한 전 총리 수사에서 명백하게 가려질 것이다. 검찰의 개과천선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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