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남쪽 끝엔 마음 심(心)자를 닮은 섬 하나가 있다. 일명 동백섬이라고도 부르는 지심도(只心島)다. 이 지심도야말로 한반도를 대신할 만큼 고요와 아름다움을 간직한 평화의 섬이다. 그러한 지심도는 그 아름다움 못지않게 잊혀진 아픈 역사까지 고스란히 가슴에 묻고 기억해내고 있다. 태평양 전쟁 말기인 1937년 무렵, 주민들을 강제 철거시킨 뒤 일본군 100여명이 주둔하며 군사기지로 사용했던 비운의 역사를 오늘도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포대, 탄약고, 비행기 활주로, 서치라이트 보관하던 곳, 일장기 게양대, 일본군 소장 사택 등 당시 일본군 군사시설물의 잔해가 여러 곳에 그대로 남아 있으니, 고요와 아름다움을 시기라도 하는 듯하다. 구한말 무지와 분열과 갈등이 빚어낸 상처, 그 상처의 흔적은 오늘도 비경과 절경 속에서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교훈하고 또 교육하고 있다. 섬나라 일본은 대륙을 삼키기 위한 목적으로 한반도를 전진기지와 병참기지화하기로 했고, 이 강산 구석구석 성한 데 없이 휘벼 파며 철못까지 박아 놓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오늘날도 이 순간 한반도는 남북한의 분단과 정치적·지역적 내분과 갈등 속에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주변 열강들의 각축장으로 여전히 재연되고 있다.

그 대표적 예가 바로 미국의 한반도 ‘사드 전진배치’다. 지금으로는 잠시 잠복기를 갖는 듯하지만 분명 이 시대에 언제 터질지 모를 뇌관임에 틀림없다. 지금 이 사드배치를 놓고 한·미 간, 한·중 간, 미·중 간, 즉 한·미·중 간의 첨예한 신경전이 예사롭지 않게 전재되고 있다.

사드(THAAD)는 미사일을 요격하겠다는 개념의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MD체제)의 여러 기능 중 하나다. 즉, 고도 40킬로미터에서 150킬로미터까지 요격하는 시스템으로 일명 ‘고고도 요격 미사일’이다. 따라서 사드의 한반도 전진배치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MD체제)의 최전방 전초기지가 되는 셈이다. 이는 지금까지의 북한을 상대로 하는 패트리엇 미사일과 같이 사거리 30킬로미터대의 낮은 저고도 요격 시스템과는 개념이 다르다. 한반도에서 발사해 한반도에 떨어지는 한국형미사일방체계(KMD)와는 전혀 다르다는 얘기다.

이러한 미국의 MD체계 도입은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을 넘어 중국을 자극하고 나아가 위협하겠다는 미국의 의지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나아가 생각해 볼 것은 이러한 미국의 MD전략과 네트워크에 한국이 가담하는 것으로 간주된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 MD는 미사일 방어체계라고는 하지만, 선제타격이 강조되는 핵전쟁에 있어 결코 방어용이 아니라 공격무기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결과적으로 중국의 입장에선 턱 밑까지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가 구축되는 상황을 좌시하지는 않을 것이란 것은 불 보듯 훤하다.

이러한 상황은 지나간 역사 속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미·소 간의 냉전체제가 한창일 때, 1960년 소련의 후르시초프는 미국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 준다는 명분으로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설치해 주겠다는 약속을 한 후, 2년 뒤인 1962년 미사일을 실은 배를 쿠바로 출항시킨다. 당시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자국의 턱밑에 설치되는 미사일 기지를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결국 케네디는 쿠바로 통하는 모든 길을 ‘봉쇄’한다는 과감한 결단을 한 후, 봉쇄는 물론 핵 공격도 불사하는 쿠바침공을 명령했다. 이에 소련의 후르시초프는 미국 케네디의 기습 펀치에 굴복하고 뱃머리를 돌려야 했으니 자칫 세계대전으로 번질 일촉즉발의 상황은 거기서 종료됐다. 문제는 반세기가 지난 오늘 이 같은 상황이 지금 이 한반도를 놓고 다시 재연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소련의 입장이 오늘의 미국이 되고, 당시 미국의 입장이 중국이 되며, 쿠바는 오늘의 한반도가 되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드의 한반도 전진배치가 주는 현실적인 문제가 뭔지를 들여다보지 않을 수가 없다. 우선 한 기당 1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사실상 한국이 부담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 북한으로 하여금 더욱 정교한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될 뿐더러, 중국은 미국의 사드 한반도 전진배치를 묵인하면서까지 한국과의 교역은 물론 관계를 유지해 나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무엇보다도 이 한반도는 다시 패권구도 속에 휘말려 내홍과 함께 다시 파국으로 치달을 공산이 크다.
‘팍스 아메리카나’ 즉,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평화와 ‘팍스시니카’ 즉, 중국이 주도하는 세계평화의 충돌이 지금 이 한반도를 비롯한 아시아에서 점화되고 있는 것이다. 평화라는 허울 좋은 단어를 앞세운 강대국의 패권은 한국으로 하여금 만만치 않은 외교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처럼 아이러니한 역사의 수레바퀴는 한반도의 주인인 대한민국과 세계의 주인이 될 대한민국의 현명한 판단과 지혜를 기다리고 있다. 또 구한말 한반도의 비운의 흔적을 간직한 채, 평화의 마음을 닮은 평화의 섬 지심도(只心島)는 오늘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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