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언론인·칼럼니스트

 
역사기록 정신을 얘기 할 때 흔히 춘추필법(春秋筆法)에 비유한다. 춘추란 역사를 지칭하는 것이며 공자의 가르침에서 따온 것이다. 과거에 신문사 편집국을 방문하면 ‘춘추대의(春秋大義)’라는 액자를 많이 보곤 했는데 역사를 기록하는 자세로 기사를 쓰겠다는 다짐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술이부작(述而不作)을 가르쳤다. 춘추를 기록할 때 ‘사실만을 기록해야 하며 절대로 창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긍익은 고금의 역사와 주요 인물들의 흥망성쇠를 기록한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을 집필할 때 ‘술이부작’의 정신을 서문에 밝힌다. 매 사건과 인물을 기록하면서 반드시 출전(出典)을 명시했던 것이다. 있는 사실과 출전이 정확한 기록만을 엮는 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래서 역사를 전공하는 학도들에게 매우 소중하게 대접받는다.

춘추관에서 역사를 기록하는 이들을 사관(史官)이라고 했다. 사관들은 목숨을 걸고 춘추정신의 사수에 목숨을 건 이들이 많았다. 임금의 언행이 사리에 안 맞으면 가감하지 않고 기록했으며 조금이라도 사관의식이 훼손될 상황이 벌어지면 임금을 성토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날 언론 정신을 얘기할 때 ‘사관의식’에 비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 언론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제대로 춘추정신을 수행하고 있는가. 사관의식을 지키려는 올바른 역사기록정신을 가지고 있는가.

언론은 스스로 자정하기 위해 신문윤리강령을 만들었다. 현재의 신문윤리강령과 신문윤리실천요강을 살펴보면 제1~3조에서 언론의 자유와 책임, 그리고 독립을 강조하고 있다. 주요한 것은 언론의 책임(제2조)으로서 건전한 여론 형성, 공공복지의 증진, 문화의 창달, 국민의 기본권 수호를 천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4조는 언론의 진실 보도, 객관 보도, 공정 보도를 결의하고 있다. 제5조는 개인의 명예와 사생활 존중을, 제6조에서는 반론권의 존중과 매체접근권의 허용을 명시하고 있다. 제10조는 편집 시에 지켜야 할 준칙을 열거하고 있다. 정확하게 편집하고 과대한 편집이나 선정적인 편집을 피하도록하고 있다.

제14조와 제15조는 언론인의 품위를 명시하고 있다. 언론인이 취재로 얻은 정보를 부당하게 이용해 이득을 올리는 행위를 금지하고, 금품 수수나 향응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근 신천지교회를 시리즈로 제작해 비판하고 있는 모 방송 보도를 보면 과연 이 같은 윤리규정을 잘 지키면서 보도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방송초기부터 이 방송사의 노조는 ‘특정인으로부터 돈을 받고 설교방송을 했다’고 폭로하는 성명서를 발표해 충격에 빠뜨렸다. 성명에 따르면 ‘지난 10일부터 월 800만원의 후원금을 받고 모 목사의 설교를 방송하기로 결정됐다’는 것이다. 노조 측은 “공정방송협의회가 열렸지만 해당 목사의 이단성을 경고하는 노조 공방위의 주장을 사측은 단호히 무시했다”며 “진짜 돈 때문인지, 또 다른 사적인 관계 때문은 아닌지 의아할 정도”라며 설교방송 결정에 뒷 배경이 있지 않는지 의혹을 제기했다.

또 민주주의 근간인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강제개종교육까지 방송해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라도 종교의 자유를 가질 수 있으며 어느 누구도 개종을 강요해서는 안 되고 신체에 압박을 가하여 의사를 꺾을 수 없는 것이다. 이 같은 탈 헌법적이며 무법적인 개종교육을 정당화하는 듯한 보도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언론은 어느 누구도 이용하면 안 되고 또 이용당해서도 안 된다. 더구나 돈에 매수당해 특정집단의 이익을 도모한다면 이는 중대한 범죄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보도를 어느 국민이 사실이라고 믿겠으며 긍정하겠는가.
급변하는 글로벌 시대 한국 언론은 구시대의 사고를 떨쳐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가치를 찾아야 한다. 지금 이 시대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대한민국과 5천만 민족을 위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

한반도는 현재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이며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북한의 핵 위협이 상존하고 있다. 민족의 화합과 평화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날로 심각해지는 청년들의 좌절과 빈곤층의 고난을 언론은 얼마나 대변하고 있는가. 그들의 아픔을 얼마나 치유하고 있으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가를 반문해야 한다.

보다 격조 높은 방송과 바른 언론을 바라는 국민들이 어디 필자만의 생각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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