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역명개정 불가… 28일 개통 앞두고 파문 확산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종교편향 논란을 빚고 있는 ‘봉은사역명’ 사태가 법정다툼으로까지 번지며 우려를 낳고 있다. 강남지역의 대형사찰명을 딴 봉은사역은 서울지하철 9호선 929정거장의 역명이다. 28일 개통을 앞두고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이 서울시에 문제를 제기하며 명칭 변경을 요구하고 있지만, 시는 현재까지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봉은사역, 929역으로” 한교연 가처분
최근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에 대한 역명사용중지 가처분이 개신교 단체의 주도로 제기돼 논란이 커지고 있다. 한교연이 지난 20일 서울시를 상대로 봉은사역 역명사용중지가처분 신청서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한 것이다.
한교연은 봉은사역명이 역명 제정기준에 부합하지 않고 종교편향을 불러온다는 등의 이유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시민들의 혼란과 불편을 막기 위해 임시적으로 봉은사역을 929 정거장으로 명명해달라고 요구했다.
봉은사역은 서울시가 주민선호도조사와 구 지명위원회, 시 지명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난해 12월 확정고시한 바 있다.
봉은사 측은 “봉은사는 불교 사찰로써의 기능 외에도 국내외 관광객에게 한국전통문화를 알리는 홍보 역할과 전통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면서 “개신교계 일부의 반발은 도가 지나치다. 우리의 전통문화까지도 부정하는 행위로밖에 볼 수 없다”고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한편 김상호 한양대 연구교수가 최근 서울시에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명 개정을 요청했으나, 시로부터 역명개정 불가 입장을 통보받았다. 그는 국제화시대에 봉은사역명이 맞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며 ‘삼성코엑스역’으로 개정해 줄 것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었다.
이에 서울시는 답변서에서 “역명의 변경은 ‘지하철 역명 제·개정 절차 및 기준’에 따라 역명으로 사용되던 목적물의 소멸 등 개정 필요성이 충분히 인정되는 경우 엄격히 제한해 허용하고 있다”며 “봉은사역을 개정할 만한 특별한 사유가 발생하지 않은 상황에서 개정 추진은 적정하지 않다”고 밝혔다.
◆개신교계, 봉은사역명 철폐운동 전개
한국교회연합은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한교연 사무실에서 ‘봉은사역명 철폐 긴급 토론회’를 가졌다. 봉은사역명 불가입장을 줄기차게 요구한 한교연은 이날 서울시민을 상대로 100만명 서명운동에 돌입하겠다는 뜻을 밝혀 파문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박명수 서울신대 교수는 발제자로 나서 “유동인구가 주말 24만명, 평일 14만명에 이르는 코엑스를 일개 사찰의 이름을 딴 것은 상식에 크게 벗어나는 행위”라며 서울시의 행정방침을 지적했다.
그는 “서울시가 봉은사역을 정하는 과정에서 역사성과 문화성을 앞세우고 있다”며 “하지만 봉은사는 불국사처럼 (서울시 또는 대한민국을 대표할 만한) 문화재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박 교수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향해 “개인적인 신앙이 공적 영역에까지 미친다거나 종교편향성을 낳는다면, 이는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뿐 아니라 모든 종교의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성토했다. 또한 서울시가 템플스테이·연등회 지원 등 특정종교에 쏠린 편향적 정책을 시행하는 것에 대해 매우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양병희 한교연 대표회장은 “다종교 사회인 대한민국은 정치와 종교가 엄격히 분리돼야 한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종교가 정치권을 이용, 행정편의와 예산을 따내는 관행이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 대표회장은 봉은사역명 제정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임원회 논의를 거친 뒤 100만명 서명 작업을 추진할 뜻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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