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김왕노(1957~  )
내게도 애걸복걸 하면서
살려달라는 일이 있구나

나에게도 베풀어야 할
자비가 있구나

나를 하늘만큼 커다랗게
생각해 주는 날이 있구나

고맙다, 파리야

[시평]
‘나’는 무엇인가. 스스로 생각하면, 하찮은 존재일 뿐이다. 저마다 저 잘난 맛에, 저 잘난 척하며 살아가지만, 어느 날 문득 자신을 돌아보면, 그저 두 다리를 지니고 허우적이며 삶을 헤쳐 나가는 존재일 뿐, 다른 무엇이 아님을 실감할 때가 있다.

이러한 ‘나’에게 파리란 놈이 두 손을 싹싹 빌며, 마치 살려달라는 듯이. 마치 애걸복걸 하는 듯이 내 앞에 앉아 있다. 아이고! 파리야. 너는 나를 하늘만큼 커다랗게 생각을 해주는구나. 고맙다, 고맙다 파리야.

‘나’ 얼마나 외로웠으면. ‘나’ 얼마나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었으면. ‘나’ 얼마나 세상으로부터 무시를 받았으면. 그저 아무 의미 없이 빌고 있는 파리에게 무한의 고마움을, 그래서 자신의 존재를 찾고자 하는가. 어쩌면 모든 존재는 이렇듯 홀로 떨어져버린, 그래서 두 손이나 싹싹 비는 파리와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