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리콴유 전 총리가 지난 23일 91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깨끗하고 부유한 도시, 청렴한 공무원 그리고 무엇보다 무서울 정도로 엄격하다는 벌금과 태형 제도 등이 싱가포르를 바라보는 세계인들의 시선일 것이다. 바로 지금의 이 싱가포르를 만든 주역이 리콴유 전 총리다. 그의 타계 소식에 싱가포르가 슬픔에 잠겨있는 것도, 전 세계에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유도 그가 싱가포르라는 한 나라를 위해 바쳤던 열정과 지도자로서의 리더십 때문이다. 리콴유의 리더십을 얘기하기에 앞서 잠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의 역사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사실 싱가포르는 불과 50여년 전만 해도 빈곤과 무질서가 판치는 나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회생이 불가능할 것만 같은 나라였다. 부존자원이 부족할 뿐 아니라, 마실 물조차 부족해서 말레이시아로부터 사다 마셔야 할 정도였다. 이런 연유로 싱가포르는 말레이반도와의 연합을 원했으나 결국 말레이시아로부터 분리 독립될 수밖에 없었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는 지리적으로는 폭 2㎞ 가량의 조호르해협을 사이에 둔 아주 가까운 나라였지만 인종과 종교의 차이가 빚은 문화적 괴리감까지 좁히기에는 너무도 멀고 먼 나라였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여러 명의 술탄(왕)들이 몇 개의 주로 나눠 다스리는 일종의 연합체 국가(지금은 연방국가가 됨)로 말레이반도 인구의 대다수가 말레이족이었다면, 말레이반도 끝자락에 위치한 싱가포르 섬의 경우는 원주민보다 중국계를 중심으로 하는 외부 이민들을 대거 받아들이면서 인구구성(인종)부터 말레이반도와는 정반대에 가까운 상황이 돼버렸다. 종교로 인한 문화차이가 생겨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이후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점령에 따른 반일 저항운동을 계기로 싱가포르에는 민족의식이 크게 싹트게 된다. 말레이시아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항일투쟁에 참가했던 이들을 중심으로 공산주의가 급격히 확산돼 1948년 비상령이 선포, 공산주의자들과 전면전에 들어가게 된다. 1963년 9월 16일 말레이-싱가포르-사바(보르네오 섬 북부지방)로 구성된 말레이시아 연방이 창설됐지만, 앞서 언급했던 인종분포와 문화, 종교 등의 여러 이유로 결국 싱가포르는 1965년 8월 9일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탈퇴하게 된다. 같은 해 9월 싱가포르는 영국연방 가맹국으로서 독립, 싱가포르 주정부에서 싱가포르 공화국 정부가 된다. 한 나라로서의 독립은 분명 반길 만한 일일 것이나 부존자원이 없던 싱가포르에게 독립은 극복하기 힘든 난관이었다.

바로 이때 지도자로서의 리콴유의 리더십과 결단력이 싱가포르를 회생시킨 원동력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콴유가 싱가포르 자치령의 총리자리에 있을 때 35세의 젊은 청년이었다. 그는 집권 뒤 제일 먼저 정부재정의 건전화를 외치며 고위공무원들의 월급을 자진삭감해가면서 재정적자를 흑자로 만들기에 나섰으며, 서민층의 생활을 안정시키려 노력했다. 이후 그는 싱가포르의 고질적인 병폐였던 부정부패를 근절하기 위한 강력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싱가포르가 원치 않는 독립을 하게 되면서 리콴유는 나라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투쟁을 시작한다. 높은 실업률과 인구증가율, 경기침체 등 무엇 하나 싱가포르를 구제할 방법이 없는 듯 보였다. 바로 여기서 한 지도자의 리더십이 빛을 발휘하게 된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서민들을 먼저 챙기려는 리콴유 전 총리의 지도자로서의 리더십은 싱가포르 국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게 됐다. 무엇보다 부정부패 척결에 역점을 뒀다. 법질서를 바로 잡아 무질서함과 범죄를 현저하게 줄였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은 말도 안 되는 말이었다. 환경보호사업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 아이러니하게도 싱가포르는 공업화를 이루면서 환경이 더욱 깨끗해진 나라가 됐다.

무엇보다 그가 존경받는 이유 중 하나는 싱가포르 인구의 소수를 차지하는 말레이계, 인도계의 권익 향상과 복지증진에도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종교나 인종으로 인한 갈등 문제가 많이 개선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리콴유는 존경받는 지도자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한 번도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불합리한 대우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지도자가 먼저 솔선수범하고, 불의를 용서하지 않고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펴오는 데 일생을 바쳤으니 어느 누가 존경하지 않겠는가. 그래서인가. 싱가포르는 매년 국가별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최상위권 안에 드는 나라이며, 부패지수가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가 됐다.

“청렴해야 한다. 돈과 이권을 밝히면 언젠가 밝혀진다. 인기보다는 존경을 얻으라. 인기는 순간이고 존경은 영원하다.” 싱가포르의 ‘국부’로 불리는 리콴유 전 총리의 국가경영철학 중 하나다. 인종과 종교를 초월하고, 부정부패와 타협하지 않는 한 사람의 지도자가 일궈낸 기적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며, 오늘날 전 세계 여러 지도자들에게 강한 메시지로 각인될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