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갱정유도 한양원 회장. ⓒ천지일보(뉴스천지)

갱정유도(更定儒道) 종지(宗旨)-‘포덕(布德)·교화(敎化)·경제(經濟)’

◆ 갱정유도 창도 개요
전북 남원시 도통동에 자리 잡고 있는 유불선갱정유도(儒佛仙更定儒道)를 창립한 강대성(姜大成, 호 迎新堂)은 서기 1890년 9월 17일 전북 순창군 구암면 봉곡리에서 태어났다.

9세 때 부친이 세상을 떠나고 모친이 글을 가르치려 하였으나 글 배우기를 몹시 싫어했다고 한다. 20여 세가 지나면서부터 모든 일에 뜻이 없고 천리(天理)에만 몰두했다.

29 세 때 문 씨 부인과 만나 아들을 낳으니 이름이 용학(龍鶴)이었다. 1922년 그는 고향을 떠나 전북 정읍군 산내면 진삼동으로 이사해 부인과 아들 3인이 수도생활을 시작했다.

1928년 기도 중에 “금강산 금강암에 가서 수도하라”는 천신의 명령을 듣고 순창 회문 산중 승강산 골짜기에 “금강암”이라는 초가삼간을 짓고 부부자(夫婦子) 세 사람이 본격적인 수련을 시작하게 됐다. 이렇게 수도하던 그는 1929년 7월 어느 날 벽력같은 소리를 지르며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도(道)를 이룬 것이다.

도를 이룬 강대성은 그 뒤 하늘에 올라가 상제(上帝)로부터 “광제창생(廣濟蒼生)하라”는 대임을 받고 지상(地上)에 내려와 부부자(夫婦子) 세 사람이 구원할 막중한 책임 때문에 3일을 울어 흘린 눈물을 나누어 마시는 누건수교리(淚巾水敎理)와 부부자 3인이 영혼을 서로 바꾸는 생사교역(生死交易)을 치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 여광여취(如狂如醉)로 남원, 하동, 태인 등을 돌아다녔다.

그 뒤 그는 진안군에 있는 운장산에 들어가 5년간을 머물면서 7인 제자를 얻고 백일공사(百日公事) 등 여러가지 공사를 벌이는 일방 본교의 기본 경전인 해인경(海印經)을 내놓게 된다. 1942년 운장산에서 나온 그는 회문산 도령동으로 옮겨가 최초의 성당(聖堂)을 짓고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해방될 것을 예언했다.

1946 년부터는 그간 필사로 기록해 놨던 책의 일부를 석판으로 발행해 가르쳤다. 강대성이 해방될 것을 예언했던 것이 꼭 들어맞았고 ‘해인경’을 읽으면 죽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져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한때 신자가 56만 명에 달했다. 6.25 얼마 전 전쟁이 날 것을 예언했고, 6.25 이후 본부를 김제군에 옮겨 28자로 된 교명(敎名) 간판을 걸고 행정체제를 갖췄다. 뒤에 다시 남원 현 위치로 옮겼다.

1953년 3월에는 태극팔도기(太極八道旗)라는 독자적인 도기(道旗)를 제작해 본부에 게양하고 「태극기 건립봉선가」를 지어 부르며 『海印經(해인경)』과 누건수교리를 영역(英譯)하여 미국대통령과 미(美) 상·하원 의장 및 유엔 사무총장에게까지 항공우편으로 발송하기도 했다.

1954년 3월 제자 5인이 상경(上京)해 ‘세계평화하실 만고무비 대성인이 한국에 출세하시었다’는 소식을 자유당 정부에 건의하려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구류(拘留)를 살기도 했다. 1954년 6월 유엔에 보냈던 편지사건 때문에 강 교주를 비롯한 60여 명이 전라북도 경찰국에 연행돼 모진 고문을 당하고 풀려났다. 강대성은 체포 당시 구타를 당했기 때문에 병이 악화돼 1954년 8월에 사망하고 말았다.

◆ 2대 교주 김갑조
뒤 를 이어 교주가 된 김갑조(金甲祚)는 1965년 6월 6일 5백여 명의 신도들을 상경시켜 서울시위사건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1965 년부터는 서울에 대대적인 포덕(布德)을 하기로 하고 5개항의 주장을 초안하여 대규모 서울포덕 계획을 진행했다. 이날 상경한 신도들은 시내에서 유인물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유인물을 살포하자 경찰이 깜짝 놀랐다. 유인물에 용공(容共)적 표현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급히 출동한 경찰이 유인물을 압수하며 이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처음 계획은 포덕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유인물만 살포하고 끝낼 계획이었으나 연행을 당하게 되자 신도들이 격분하기 시작했다. 5백여 명의 대규모 군중시위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5백여 명이 모두 붙잡혀 경찰에 분산 수감됐다.

이들이 이 시위에서 주장한 내용은 ▲‘원미소용(遠美蘇慂)하고 화남북민(和南北民)하자(미·소의 종용을 멀리하고 남북민이 화하자)’ ▲‘민족도의(民族道義)라야 통일독립(統一獨立)된다’ ▲‘양이적풍(?夷狄風)해야 화민양속(化民良俗)한다’ ▲‘통만국회(通萬國會)하야 보호험약(保護險弱)하자’ ▲‘충효간성(忠孝干城)으로 세계화평(世界和平)하자’ 등 5개항이었다. 조사결과 이들의 주장에 별다른 혐의가 없고 동기가 순수했음을 알게 된 경찰은 모두 귀가시키고 몇 명만 구속했다가 뒤에 석방했다.

서기 1984년 3월 파주군에 있는 임진각에서는 남북통일과 세계평화를 비는 대제(大祭)를 거행하기도 했고, 서기 1985년 3월에는 도의앙양실천대회(강연회)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4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개최한 바도 있다.

◆ 도의(道義)
신앙의 대상은 선당궁(仙堂宮)이니 24절후가 표시된 원형의 천문도(天文圖)에 ‘선단궁’이라는 글자를 중앙 상단에 쓰고 그 아래 좌우에 동서 음양의 표시로 전(錢)자와 곡(穀)자를 쓰고 또 그 아래에 하재불멸(何災不滅) 하복부진(何福不臻)이라 써서 동향으로 둔다. 그리고 선당궁 옆에는 도조 영신당(迎新堂)의 영정이 있다.

도리강령은 ‘시운기화유불선동서학합일유도갱정교화일심(時運氣和儒彿仙東西學合一儒道更定敎化一心)’이다. 유불선과 동서학을 합일하여 새로운 유도의 세상을 건설 하자는 것이다. 강령은 자강불식(自强不息)·창도진전(創道進展)·광대포용(廣大包容)이며, 종지(宗旨)는 포덕사업(布德事業)·교화사업(敎化事業)·경제사업(經濟事業) 등이다.

교리 사상을 구체적으로 논하면 누건수교리(淚巾水敎理)·생사교역(生死交易)·해인경사상(海印經思想)·미래관으로 나눌 수 있다.

◆ 신행의식
도 인들의 일과는 기상과 함께 ‘영선도인법’이라는 특수한 체조를 한다. 영선도인이란 목구멍을 통해 선기운을 몸으로 인도한다는 의미로 먼저 눈을 감고 고요히 앉아 두 손을 꼭 쥐고 정신을 안정한 다음 치아에서부터 귀·머리·입안·숨고르기·전신마찰·팔다리운동·침(신수)삼키기 등 36가지 동작이 진행된다. 운동이 끝나면 머리를 손질하고 5시가 되면 선당궁이 있는 동쪽을 향해 꿇어 앉아 아침기도를 한다.

유도인들은 일상예법이나 관혼상제는 과거 유교의 예법에 준한다. 그러나 성인의 가례는 남자가 20세가 되면 길일을 택해 상투를 올리는 가관식을 행하는 데 삼차가례법에 의해 가관가(加冠歌)를 불러주며 성인됨을 축하한다. 3차에 걸친 가례가 끝나면 청포를 입고 갓을 쓰고 조상에게 배례를 한다.

특 별기도수련은 1년에 한두 차례 행한다. 이 특별수련은 보통 15일간이나 때로는 100일 수련도 하며 이 두 수련을 연속적으로 반복하기도 한다. 하루 일과를 보면 4시에 기상해 ‘영선도인법’ 운동, 폐기조식에 이어 목욕을 한 후 의관정제하고 자오묘유(子午卯酉)로 치성을 올린다. 시기는 농한기가 보통이나 100일 수련을 연속으로 하게 되는 경우 1년 내내 계속된다.

◆ 입도절차와 신자의 의무
입도절차는 3일 전부터 목욕재계하고 새 필묵(筆墨)으로 ‘일심서’ 양식에 따라 성명·생년월일·주소를 새 백지에 기록하여 선당궁전에서 재배하고 부복한 후 옥황상제에게 일심불변(一心不變)하겠다는 일심서(一心書)를 세 번 낭독해 고한다.

도인들에게 두발은 생명처럼 귀중하니 소년 소녀는 머리를 땋아 댕기를 매고 성인이 되면 상투를 틀며 여자는 쪽을 진다. 집안에서는 유건을 쓰고 외출할 때는 갓을 쓴다.

◆ 제례
제례는 크게 나누어 대제, 이십사절후 치성, 산제로 나누어진다. 대제는 천지대제(10월 8일, 4월 8일)와 도조대제(8월 16일)이다. 천지대제와 도조대제는 가장 큰 행사다.

대제 때 제관들은 7일, 제원들은 3일을 재계하고 당일 새벽 3시가 가까워지면 다시 목욕재계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3시 정각에 본부성당에서 제례 절차에 따라 봉행한다. 파제(罷祭) 후에는 영가무(詠歌舞)가 뜰에서 거행된다.

이십사절기 치성은 24절수에 맞춰 각자 가정에서 정화수를 떠놓고 치성을 드린다.
산제로는 ▲5월 5일 회문산 산제(도조 도각자리) ▲9월 9일에 지리산 산제(노고단탑) ▲7월 7일에 계룡산 산제 ▲3월 3일에 백운산 영대암산제(계도선사 도통지) 등을 지낸다. 산제 때는 본부임원 중에서 참석하고 지역에 따라 그 지역의 일반 도인들이 동참한다.

◆ 조직 및 활동
도단에 전 10장 40조로 된 도헌(道憲)이 있다. 조직과 제도는 크게 둘로 나뉘는데 도맥을 잇는 법통전승과 행정조직으로 대분된다. 도계는 도조에 이어 계도선사가 대를 이었다.

행정조직으로는 도조 재세시부터 도의 대표가 행정책임자로 선임됐다. 사지례장·28수·절안장·기안장·후안장 등의 조직이 있어 덕망·학식·포덕의 공에 따라 서위한다. 도정(道正:도중대표) 아래 도무원장·총무·재무·교무·포덕·수련의 5부와 부녀회·청년회·감사·간사를 두고 있다. 집행부의 임기는 3년으로 하고 운영위원 36명이 도중의 중요사항을 결의한다.

교육은 숙당(塾堂)과 양당(孃堂)으로 나뉘어 숙당은 남학생, 양당은 여학생의 학당이다. 숙당의 선생은 선생으로 호칭하지만 양당에서는 여무사라 한다.

서당의 학업은 대체로 재래식 서당과 같으나 사서삼경과 도의 경전인 부응경을 공부한다. 도인 수는 한때 수십만 명에 달했으나 현재는 정확한 수는 파악이 어렵다.

<참고> (사)한국민족종교협의회 발간(發刊) ‘한국민족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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