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G생활건강 VDL 매장 ⓒ천지일보(뉴스천지)

화장품 할인행사, 회원가입은 필수
충성고객 만들기 위한 포석 깔기

[천지일보=김지연 기자] #직장인 A씨는 최근 서울 명동 거리를 지나다 화장품 숍에 들렀다. LG생활건강에서 운영하는 VDL 매장이었다. 세일 중이라고 크게 붙여 놓은 입간판을 보고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할인율은 제품마다 20% 또는 최대 50%까지 다양했고, 이를 고려해 적당하게 구매 품목을 선택했다.

하지만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려는 순간, 점원은 “회원만 할인이 된다”며 아이패드를 켜서 들이밀었다.

A씨는 어쩐지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지도 않던 회원가입을 즉석에서 하려니 당황스러운 마음이 드는 한편, 가입을 안 하자니 할인기간에 제값 주고 사는 건 억울했다. 그냥 나가자니 한참 동안 물건을 고른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A씨는 불편한 마음으로 아이패드를 터치하기 시작했다. 매장은 세일을 맞아 붐볐다. 계산하려는 손님이 몰려들면서 카운터가 복잡해졌다.

A씨의 눈에 ‘약관 전문 읽기’가 보였지만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동의하지 않으면 다음 화면으로 넘어갈 수 없는 회원가입 절차를 빨리 끝내기 위해 그저 터치를 반복했다. ‘더페이스샵’ 통합 회원에 동의하라는 체크란도 보였다. “이것도 해야 하나요?” “네” 점원이 대답했다. VDL과 더페이스샵은 모두 LG생활건강이 운영하고 있다.

계산을 하고 물건을 건네받은 A씨는 회원에 한해 할인을 적용한다는 내용이 매장 밖에서도 볼 수 있게 쓰여 있는지 물었다. “네, 다 표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매장을 나와 보니 그런 내용은 찾을 수 없었다. 다만, 5만원 이상 구매 시 5000원 혜택을 준다는 내용에는 ‘회원 대상’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A씨는 찜찜한 마음을 안은 채 거리를 빠져나왔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 된 화장품 브랜드의 세일 행사. 일년에 2번이든, 그 이상이든 세일을 하지 않는 곳이 없다. ‘노세일’을 고수해온 스킨푸드조차 최근 창사 이래 첫 세일을 실시했다.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는 반갑다. 하지만 난점은 세일을 받기 위해 회원가입이 필수라는 사실이다. 이름, 생년월일, 연락처 등이 기본으로 들어간다.

소비자는 혼란스럽다. 미샤, 더페이스샵은 세일 기간에도 회원가입 없이 할인을 받는다. 반면 더샘, 토니모리, 스킨푸드, 네이처리퍼블릭 등은 회원가입을 해야 한다.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움이나 에스쁘아, 이니스프리 등도 마찬가지로 가입이 필수다.

이는 어쩌다 한 번 들르는 불특정 ‘뜨내기’ 손님보다 브랜드에 높은 충성도를 보여주는 고객을 제대로 관리하겠다는 업체들의 전략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2011년까지는 세일의 양상이 지금과 달랐다. 회원 가입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세일을 하거나 특별한 날짜를 지정해서 진행하는 ‘데이마케팅’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출혈경쟁이라는 문제가 제기됐고, 불황 탓에 손님들이 세일행사를 찾는 현상이 심화되자 효율적인 운영 방안을 찾게 됐다.

이에 2012년 무렵부터 화장품 회사들은 ‘멤버십 데이’ 할인으로 방향을 틀었다. 충성도 높은 고객을 만들고 관리하기 위해서다. 전략적으로 회원들에게 혜택을 주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단 회원가입을 통해 고객의 정보를 수집하면 데이터베이스 구축이나 빅데이터 분석에 활용할 수 있다. 문자나 이메일로 세일·프로모션 정보를 알리고 매장 방문을 유도할 수도 있다.

토니모리 관계자는 “회사 입장에서도 비용을 들여 행사를 하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고객과의 접점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아리따움의 경우 빅데이터를 관리함으로써 재방문율이 높아지는 것을 확인했다”며 “회원가입을 통한 고객 관리가 효과적이라는 인식을 갖고 내부적으로도 공을 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아모레의 아리따움이나 이니스프리는 멤버십 등급에 차등 할인율을 적용하고 있다. 이니스프리의 경우 일반회원 10%, 우수회원(VIP) 20%, 그린티 클럽과 최우수회원(VVIP)은 30%다. 이외에 VVIP 회원만 신청할 수 있는 키트 증정 행사도 진행한다.

스킨푸드도 최근 할인행사를 하면서 4개 회원등급(일반, VIP, VVIP, S클래스)에 따라 15~30%의 할인율을 차등 적용했다. 이 같은 현상은 업계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브랜드숍의 경우, 미샤나 더페이스샵을 제외한 후발업체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로열티를 보여주는 고객들에게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다”며 “멤버십 제도를 어떻게 강화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일부 브랜드는 평상시 적립율을 5~15%까지 차등화하거나, 회원 중에서 추첨을 통해 인기 아이돌이 출연하는 행사에 초청하기도 한다. 에이블씨엔씨의 미샤, 어퓨 등은 세일 기간에 회원가입 없이 할인이 가능하지만 회원가입을 하면 통합시스템으로 마일리지가 적립된다. 7단계의 회원 등급에 따라 2~12%까지 적립율이 다르다.

VDL은 4월부터 멤버십 제도를 변경할 예정이다. 그동안은 회원 등급에 따라 평상시 각각 5, 10, 15%의 할인 혜택을 제공했지만 이를 폐지한다.

대신 새로운 멤버십은 구매를 꾸준히 하면 할수록 받을 수 있는 상품이나 쿠폰이 늘어나는 방식이다. 일반 회원의 경우 정품 수령 쿠폰, 생일 할인쿠폰, 메이크업 레슨 쿠폰이 나간다. VIP에게는 정품 구성 키트, 생일 30% 할인쿠폰, 추가 이벤트를 통한 정품 수령 등의 혜택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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